4월 8일 북미 전역에서 관측된 total eclipse가 예수 재림의 전조라는 주장이 있었다. 재림과 휴거에 대해 원래 관심이 없지만, 내가 사는 나라가 전쟁을 하고 있으면 그런 데 관심 갖기는 더 어렵다. 북미의 에반젤리컬 신자들이 참, 편안하게 사는구나 다시금 느낀다. 그래도 4월 8일을 휴거라고 못 박은 것도 아니고, 그냥 전조 중 하나라고 두루뭉실 말한 거니까 뭐.
신약 성경은 예수님이 금세 이 땅에 다시 오시리라 믿어야만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됐다. 악인은 심판을 받고 의인은 보상을 받는다는 유대교의 중요한 믿음 중 하나가 크게 다뤄졌다. 물론 종말은 사도 바울이 전략적으로 다뤘고, 예수님 본인도 직접 말씀하셨지만. 복음서 내용과 바울 서신 내용이 다르고, 이 둘은 요한계시록의 내용과도 또 다르다. 무엇보다 시기에 관해서 저자들 사이에 아무런 합의가 없었다. 예수님은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
아무도 모르는 때를 왜 자꾸 맞추려고 할까. 일식과 관련된 종교 이론은 천문학적 사건에서 의미를 찾는 인류 종교사의 오랜 관행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기원전 44년, 카이사르의 암살 4개월 후다. 로마 상공에 혜성이 나타났고 일주일 이상이나 관측됐으며 너무 밝아서 늦은 오후에도 볼 수 있었단다. 로마인의 해석은 카이사르가 하늘로 올라가 로마의 만신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로마 원로원은 투표를 통해 카이사르의 신격화를 공식화했다.
최근 30년은 세계사적으로 흉흉한 일들이 많아서인지 천문학적 현상에 집착하는 종교인들이 특히 많았다. 2020년 12월에는 목성과 토성의 합이 동방박사들을 아기 예수께 인도한 “베들레헴 별”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라는 주장이 있었다. 예수님이 어디로 오실지 몰라서 별이 필요한가? John Hagee 목사(목사는 맞나?)는 종말이 다가온다는 신호로 다양한 "블러드 문" 이론을 장려해 왔다. 너무 복잡한 관계로 생략.
천국의 문(Heaven's Gate)으로 알려진 그룹은 1997년 나타난 혜성의 꼬리에 우주선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고, 이 우주선이 자신들을 더 높은 수준의 의식으로 데려가려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보드카를 마시고 집단 자살을 저질렀다. 사인은 대개 질식사였다.
4월 8일 토탈 이클립스가 종말의 전조라는 데는 두 가지 근거가 있었다. 이번 일식이 2017년으로부터 7년 간격이니까 성경이 말하는 완전성을 나타내는 숫자이고, 북미를 통과하는 일식의 경로를 표시하면 십자가 모양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허술할 수가. 2017년 8월 21일에서 2024년 4월 8일까지는 7년이 아니라 6년 반, 즉 2,422일 간격이다.
무엇보다 일식은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지구도 달도 궤도 위를 항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가면서 태양의 전부나 일부가 가려지는 현상은, 달 그림자에 해당하는 지구상의 좁은 영역에서만 관측되기 때문에 잘 안 보일 뿐이다. NASA에 따르면 지난 1,000년 동안 연간 평균 2.5회의 일식이 있었다.
하지만 믿음은 상식의 영역이 아니다. 상식을 근거로 믿음을 훈계할 수는 없다. 어쩌다가 저런 믿음을 갖게 된 걸까. Hal Lindsey가 쓴 책 "The Late Great Planet Earth"가 원조라는 설이 있다. 1980년대 종말이 있을 거라면서 여러 세계사적 현상으로 종말론적 서사를 구성했는데, 거기 이스라엘 건국과 핵전쟁이 포함된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으니 할 린지의 생각은 틀렸다고 봐야겠지.
복잡한 천문학에 큰 관심이 없는 우리나라 기독교는 이런 류의 휴거와 종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다행이기만 할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종교 생활을 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물질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너무나 세속적인 종교 담론들만 오간다. 기독교를 믿어야 강자가 될 수 있다고 하지를 않나. 종말의 때가 궁극적으로 신비의 영역이고 알 수 없다는 점을 우리나라 기독교는 태평세월의 근거로 여기는 모양이다. 기독교는 예수도이다. 도를 닦는 것이어야 하지 않나.
2020년 6월 21일 레바논 베이루트 세인트 조지 교회 너머로 관측된 일식(AP Photo/Hassan Ammar)
유대교 입장에서도 개기일식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일식은 어쨌든 초승달(상현달이 히브리어 자인 모양, 즈리하고, 하현달이 김멜 모양의 마친다는 뜻의 가마르)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초하루를 중시하는 유대교 달력과 긴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4월 8일은 히브리력 첫째 달이자 구원의 달 니산 월의 초하루다. 많은 북미 유대교 회당들이 개기일식이 관측되는 시간에 피스트를 열었다. 잠깐, 유대교에서 개기일식은 나쁜 징조가 아닌가. 물론 그렇지만 북미 유대인들도 과학 세계에 적응해 사니까. 유대교 경전인 탈무드가 완성된 주후 5세기는 천문학의 발전이 초절정에 이르렀던 시기다. 미신으로 찌든 이상한 종교들보다 깔끔한 인식을 갖고 있다. 축복을 제공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 없이도 자연계의 장엄함과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적절한 순간을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통파 가운데는 밤에 착용해서는 안 되는 찌찟을 태양이 가려지는 동안에는 치워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아무튼 니산월 초하루에 개기일식을 목격한 북미 종교인들은 이 자연을 창조하신 이의 위엄과 경외감에 관련돼 여러 세대 이어질 이야기 하나를 갖게 됐다.
세계적인 구호 기관은 기독교에서는 적십자, 유대교에서는 빨간 다윗의 별로 표기하는데 이슬람교에서는 레드 크레센트다. 이때 크레센트는 상현달일까, 하현달일까. 대개 C자 모양의 하현달이지만 나라 모양이 묘한 터키는 C자를 거꾸로 쓴다. 히브리어로 달을 뜻하는 단어가 야레아흐 말고도 사하르가 있다. 그래서 레드 크레센트, 적생월은 하사하르 하아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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