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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아흐 지상전 시작

우리말이 '라파'라고 오기하고 있는 가자 지역의 이름은 라피아흐이다. 최소한 라파흐,는 돼야 한다. 고대 근동 세계에는 꽤 잘 알려진 도시다. 이집트 파라오의 군대도, 메소포타미아 왕들의 군대도 이곳을 지나갔다. 기원전 3세기 지역 패권자를 가리는 프톨레미와 에피파네스 두 헬라 군주의 싸움에서 아프리카산 코끼리와 아시아산 코끼리가 격돌했던 곳이기도 하다. 결과는 아시아산 코끼리 승리. 냄새가 저 세상급이었다고.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코끼리는 멸종됐다고 알려진다. 

 

1841년 이집트를 대리 통치하던 영국은 오토만과 국경을 긋기로 합의하는데, 라피아흐에서 타바까지다. 라피아흐의 중요성은 당연히 수에즈 북쪽이라는 점이다. 그 아래로 시나이 반도는 오토만의 것이 된다. 이후 오토만은 보스포스 병자답게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이스탄불에서 멀리 있는 촌구석 국경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영국도 처음부터 이쪽 지형과 정세에 빠삭하지 않았다. 1905년 오토만의 실질적인 마지막 술탄 압달 하미드 2세가 치세 25주년을 기념해 역사적인 히자즈 기차를 놓는다. 다마스커스에서 알마디나에 이르는 기차는 무슬림 순례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아라비아 반도를 놓쳤다는 걸 눈치챈다.

 

그래서 국경을 다시 정하는 협상을 하라고 군대를 보낸다. 누구 맘대로? 암튼 타바에서 홍해를 건넌 아라비아 반도의 관문 아카바에 영국군 Bramley 장군이 도착한다. 아라비아 반도를 지키는 오토만 장교는 Rushdi라는 인물이었다. 하필 이분이 위대한 군인이었다. 오토만 군대는 영국군을 물리치고 아카바를 수호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영국은 오토만 제국에 선전포고를 했고, 미적지근했던 아랍 부족들을 통합해 아카바를 공격하게 한다. 1917년 7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참전한 그 전투다. 1918년 12월 영국 군은 가자에서 브엘세바를 거쳐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오토만의 루쉬디 대령이 지켜준 타바 국경에 막힌 이집트는 아라비아 반도에 상륙하지 못한 채 독립한다. 1949년 3월 유엔에서 휴전이 논의 중일 때 이스라엘은 네게브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서둘러 군대를 보내 타바와 아카바 사이의 항구, 에일랏에 깃발을 꽂는다.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평화 협상에 합의한다. 협상은 2년 가까이 진행됐고,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 마침내 국경선이 결정된다. 라피아흐는 양측이 절반씩 갖기로 한다. 이스라엘은 1967년에 가자와 시나이 반도를 정복했었다. 라피아흐 남쪽에 꽤나 큰 규모로 지어진 이스라엘의 해안 도시 야미트가 있었는데,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야미트의 정착민들을 소개하기 위해 IDF를 동원해야 했다. 1982년 4월 23일 약 2000명의 야미트 거주민이 모두 소개된다. 이맘때 노암 촘스키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삼각 게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비난을 시작했다. 

 

강에서 바다까지 (유대인을 다 쓸어버리고)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라는 미국의 대학생들은 타임슬립이 시급하다. 여기 언급된 시점들에 한번씩 다녀오시라. 죽을 수도 있으니 몸조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의 속편한 대학생들이 공부 대신 점거 데모를 시작한 건 역사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패색이 짙어지면 미군 파병이 불가피한데, 거기 신경 쓰는 사람은 왜 아무도 없나. 굳이(!) 팔레스타인 문제로 죽기살기로 데모하고 있는 자신에게 물어보시라. 그 대단한 신념은 왜 그렇게 편향돼 있는지.  

 

하마스의 항복을, 최소한 정권을 놓고 물러나라는 요구를 단 한번도 하지 않는 반전 시위. 가자와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주장하면서 지난 80년 동안 땅을 실질적으로 점유해온 유대인, 민간인 학살에 입을 다무는 위선. 이게 표현의 자유라고? 미국이 지금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게 돈 많은 유대인 압력 때문이란다. 미국 본토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봐야 생각이라는 걸 좀 할까.

 

5일 밤 9시 IDF 지상군이 라피아흐 국경을 넘었다. 다음날 아침 8시에는 라피아흐에서 '가자'가 지워지고 이스라엘 국기가 꽂혔다. 오전에 회의가 있었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멍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전부 다 멍하다. 문장 하나 마치고 잠깐 고요해질 때마다 생각이 어딘가로 날아간다. 틈틈히 전화까지 받았는데 뭐라고 답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 점심 때 상담이 있었다. 내 하소연을 들어줘야 하는 분은 전선에 가 있는 집안 남자가 세 명이나 된다. 견디다 못해 상담에 왔는데 입을 열 수가 없다.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사고하는 능력과 표현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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