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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전선의 휴전

2024년 11월 26일 오후 10시경,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13개 합의안을 발표하며 레바논 영토에서 휴전을 선포했다. 중동 특사 호흐슈타인이 부지런히 오가며 어찌어찌 장만한 협상안을 토대로, 미국과 프랑스가 합의하고, 그 내용을 이스라엘 내각이 컨펌해서, 모양 좋게 바이든 대통령이 선포한 다음, 27일 오전 10시부터 실효에 들어갈 계획이다. (밤 12시가 넘도록 공습경보가 계속 울리더니 실효 시간이 새벽 4시로 당겨졌다. 오전 중에 민간인 희생이 나올까봐서란다. 레바논에는 축포가 터졌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여론을 호도하기는 참 쉽다.)

 

휴전을 앞두면 전투는 더 치열해진다. IDF는 26일 오전 20개 목표물을 타격했고, 지상군은 리타니 강 근처까지 올라섰다. 곧 철수해야 하니 점검해야 할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휴전 연설 직전에 로켓이 날아들어 하이파 남쪽까지 공습 경보가 무섭게 울었다. 이럴 줄은 알았고.  

 

문제는 목전에 접어든 휴전의 효력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자에 집착하며 아직도, 100여 명 인질들이 417일 동안이나 잡혀 있는데도 휴전은 없다고 버티는 이스라엘 총리는, 레바논과 휴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국민들을 향해, 휴전 배경을 대충 설명했다. 대략 미국이 무기를 안 보내줘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되겠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휴전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시민은 37%에 불과하다. 총리 지지자들 중에서도 지지율은 20%가 고작이다. 이스라엘 국민이 전쟁광이라서 휴전을 못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시작된 북쪽 국경의 분쟁은 하루에 수백발의 장거리 로켓이 쏟아져 텔아비브까지 사정거리에 들어간 지경이고, 6만 명이 넘는 북부 지역 주민들은 자기 집을 떠나 자기 나라에서 난민 생활중이다. 2006년 전쟁을 멈춘 이후 헤즈볼라가 뭘했는지 확인한 마당에, 또 같은 일을 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밖에 더 되나? 아니, 1년 3개월 만에 휴전을 하는 이 지경에, 여전히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대체 뭐하러 휴전을 하는 건가? 

 

내각회의를 앞두고 북부 지방 자치단체장들과 이스라엘 총리가 만났다나 보다. 마침 뉴스 시간이라 회의가 끝나고 이들의 격앙된 목소리가 그대로 방송에 나왔다.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게, 북부 지역 주민들에 대한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휴전 기간이 60일이니, 그만큼의 난민 생활도 확보됐다. 레바논 남부 지역은 레바논 군대가 지키고 헤즈볼라의 무장은 이뤄지지 않으며 중무기들은 리타니 강 위로 이동시킨단다. "우리는 헤즈볼라를 믿지 않고, 레바논 정부를 믿지 않으며, 이스라엘 정부를 믿지 않는다." 아멘이다. 명언도 나왔다.  "זה לא חרבות ברזל, אלא חרדות ברזל" 이건 철검(이번 전쟁 명칭)이 아니라 철의 염려다. 

 

북부 국경 지자체장들의 정치 성향은 대개 네탄야후 정당 쪽이다. 그래도 반대가 거세다. 

 

이스라엘 내각 회의에서 벤그비르가 반대했다나 보다. 그의 반대는 북부 지방 시민들을 걱정해서는 아니다. 그래도 정부를 떠나는 일은 없을 거란다. 그동안 씨부린 게 있는데 이렇게 말과 행동이 다르다니, 놀랍지는 않다. 가자에 목숨 거는 것치고는 북부 국경에 참으로 관대하다. 그쪽 지명이 성경에 안 나와서 그런가.  

 

코메디가 따로 없는 게, 헤즈볼라 지도자의 하소연이다. 지하디스트들이 휴전에 반대하며 쿠데타를 일으킨단다. 이번 휴전이 깨져도 누구한테 책임 소재가 있는지, 분간할 도리가 없겠다. 

 

이스라엘 강경 정부가 이번 휴전을 받아들인 이유는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IDF는 지쳤다. 이 나라 역사에서 1년 3개월 전투를 이어간 경우가 처음이다. 게다가, 이 조직의 문제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군대가, 전투를 이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국제 사회의 압력을 무시만 하기가 쉽지 않다. 휴전해도, 반이스라엘 정서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무기 제공까지 미루고 압박하는 바이든 임기부터 끝내고 볼 일이다. 60일 버티면 대략 1월 20일이다. ICC의 네탄야후와 갈란트 체포 영장 발급에 대한 유럽의 입장도 심상치 않다. 바이든 정부의 마지막 G7 외무부장관 회의에서 체포영장이 명시되진 않았지만, 영국과 이탈리아는 자국 방문 시 체포 가능성을 비치기도 했다. 

네탄냐후 총리의 각종 비리 재판이 12월에 이어질 예정이다. 총리실에서 기밀서류가 흘러나와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는 점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10월 7일에 대한 진상조사도 대략 마무리됐으니, 그닥 책임질 생각이 없는 총리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거세질 참이다.    

가자의 하마스에게 끈떨어졌다는 위기의식을 가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하마스는 아직도 견딜 만하다는 모양이다. 불쌍한 가자 시민들을 위해 전쟁을 멈추라는 주장은 이스라엘에게 할 말이 아니다. 전 세계의 동정심 많은 좌파들은 왜 하마스한테는 자기 백성을 책임지라고 촉구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전쟁이 정치와 섞이면 냉소를 동반하게 된다. 신물이 난다.

레바논 남부로 돌아가는 피난민 행렬. 헤즈볼라 깃발 좀 보소. 1년 4개월이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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