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속 부실한 영양에 대한 염려로 고기를 먹기로 했다.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먹는 것도 다 한때다. 그 비싼 걸 먹고 소화가 안돼 고생하고 싶지 않다. 결국 고기를 사서 요리를 하기로 했다. 이 나라는 파는 고기가 제한적이라 알려진 요리법도 많지 않다. 폴란드 유대인, 즉 아슈케나짐의 '클롭스'를 만들기로 한다.
육즙에 대한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가장 무난한 고기 요리법은 역시 고기를 갈아서 쪄먹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저 삶은 달걀이다. 닭고기나 소고기에 비해 달걀의 영양이 더 많을 수는 없으니 아무래도 장식용 같다. 막 삶아져 나온 탱탱한 달걀을 엄청난 온도 속에 다시 넣고 장시간 쪄내는데 무슨 영양이 남을 것 같지도 않다. 물론 내 성의없는 요리 재주를 감안해야겠지만 미관상 대단히 좋아보이지도 않다. 자, 맛은 어떨까. 고기 맛이다.
우리나라는 불고리나 장조림처럼 요리 명칭에 조리법이 깊이 관여하지만, 유럽에서는 요리 모양과 관련된 직관적인 이름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성의없는 작명에 놀라곤 한다. 적어도 이 요리 클롭스가 좋은 예다. 폴란드어로 고깃덩어리다. 영어로 meatloaf, 미식을 숭상하는 프랑스는 rôti haché 갈아서 구운 고기다. 독일어가 희한한데 Falscher Hase 가짜 토끼 되겠다. 독일에서 부정적인 건 대개 폴란드와 관련돼 있으니 '폴란드 토끼'로도 불렀다. 폴란드 유대인들이 가져온 요리라 이스라엘에서는 '클롭스'로 통한다. 독일에서는 전쟁 후 대가족의 고기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비싼 토끼 요리 대신 돼지고기를 이용한 싸고 간단한 요리법으로 시작됐다고 알려졌는데, 원조가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영국 요리는 맛없기로 유명하지만 대신 그들은 코스모폴리탄 시티를 건설했다. 런던은 누구에게나 먹고 싶은 게 차고 넘치는 곳이다. 정말 끼니 때울 의욕이 안 나는 곳은 독일이다. 무조건 고기를 먹는데, 대개 저렇게 갈아서 저민 듯한 고기 한 덩어리를 희한한 소스와 함께 내준다. 호텔 저녁 식사 메뉴가 기대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정기적으로 출장을 가면 간혹 가정식에 초청받기도 하는데, 사정은 비슷하다. 독일 가정식의 비장의 무기도 hackbraten 고깃덩어리다. 독일인 입맛에는 이게 그렇게 맛있나.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요리가 '싸다'는 것이다. 일요일 저녁 만찬에서 그나마 싸게 먹을 수 있는 고기 요리, 독일인은 실용적이다. 짠돌이이기도 하고.
요즘은 채식이 대단한 희생인 것처럼 굴지만, 사실 고기 없이 맛을 낸다는 건 비싸고 힘든 일이다. 주방 노동 전담자가 있는 나라에서 발전한 식문화는 대개 야채에 대한 해석이다. 고기는 사실 어떻게 해도 맛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다지 할 게 없어 복잡할 게 없다. 클롭스는 5분간 뚝딱거리다가 45분 오븐에 넣어두면 나온다.
이스라엘에서 오븐이 필요한 이유를 겨울에 실감한다. 보조 난방기구다. 예열까지 합하면 한 시간도 넘게 160도 발열 기구를 켜놓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 집이 따뜻하다. 이러니 이스라엘 한겨울에 클롭스를 질리도록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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