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다니 카라반(1930-2021)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이스라엘에 있는 그의 작품은 전부 보았다. 아마도.
- 르호봇, 와이츠만 인스터튜트 Clore house, From the Tree of Knowledge to the Tree of Life
- 텔아비브, 지방 법원 Court of Justice
- 브엘세바, Negev Monument
- 예루살렘, 이스라엘 국회 포디움 Pray for the Peace
- 르호봇, 와이츠만 인스터튜트, Memorial to the Holocaust
여기까지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다니 카라반이 이스라엘에 만든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land art라고 부르는 이유는 장소, 공간이 작품의 의미를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브엘세바 광야 한복판에 있는 네게브 기념물이다. 독립 전쟁 당시 네게브를 지키기 위해 죽은 이들의 추념비이다. 높은 탑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서 빈 공간에 울림을 만든다. 그게 죽은 이들의 노래 같기도 하고 남은 자들의 곡 같기도 한다. 이게 만약 텔아비브 마천루 사이에 있다면 이상하겠지. 네게브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들은 다니 카라반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고 이후 작품들은 외국의 의뢰를 받아 그 나라들에 설치됐다. 간간히 이스라엘에서 계속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텔아비브, Kikar Levana (White Square)
- 하데라, 간 하메야쓰딤 (도시 창립자들의 정원)
- 니짜나, Way of Peace
- 텔아비브, Square of Culture (하비마 광장)
- 예루살렘, 간 하렐
텔아비브 키카르 레바나, 하얀 광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다니 카라반의 작품은 감상을 위한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Land Art이다.
다니 카라반의 작품을 한두 개로 요약해야 한다면 이중에는 없을 수도 있다. 스페인 포르보우에 있는 Walter Benjamin을 위한 오마주 Passages, 일본 가고시마에 있는 Bereshit, 독일 베를린 티에르가르텐에 있는 Sinti & Roma Memorial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내게 그의 최고 작품은 이집트 국경에 서 있는 100개의 기둥이다. Way of Peace, 100개의 언어로 평화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한국어를 찾고 싶었으나 기둥 다섯 개까지 보고 뻗었다. 사이 좋지 않은 이웃 옆에 사느라 불안한 니짜나 주민들이 도시를 키우고 주민을 유치하겠다고 이곳에 주택지를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기둥들을 조금 옆으로 옮겨 달라고 했단다. 이 장소를 떠나면 작품이 의미를 잃는다는 걸 건설업자들은 굳이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다니 카라반은 2018년부터 2021년 5월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 영화를 촬영했다. High Maintenance란 제목으로 발표됐다.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미뤄지고 그 사이 작가가 사망하면서 이스라엘 텔레비전 칸에서 판권을 사서 방송을 하기도 했다. 작가의 꼬장꼬장한 성격은 뜻밖의 웃음을 많이 주었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다큐 감독 바락 헤이만이 그의 작품이 자연 속에 배치되는 것에 관해 질문을 했다. 다니 카라반은 예술은 정치를 말하지 않지만 정치를 떠날 수 없다고 발언하는데, 그러면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예로 든다. 히브리어로 구에르니카, 이다. 젊은 감독 바락 헤이만은 구에르니카,를 못 알아들었고, 그래서 그게 뭐냐고 질문한다. 그때 작가의 표정이 예술이다. 충격을 수습하듯 작가는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하고, 가다 말고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미술사 수업을 공짜로 해 줄게. 피카소의 구에르니카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어째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
감독은 이 장면을 영화의 트레일러로 사용한다. 동의한다. 1시간 남짓 다큐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경미한 치매를 앓고 있던 작가는 예술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고스란히 드러내지만, 얼마 전 카메라 앞에서 한 말을 잊기도 했다. 영원을 바라며 평생을 창작 활동에 바쳤으나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래도 의미가 있을까.
이 다큐멘터리는 이스라엘과 폴란드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렸다. 이 영화에 출자한 폴란드영화소는 투자한 제작비를 전부 회수했는데, 자신들을 홀로코스트의 가해자로 묘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가 나치를 방패 삼아 유대인에게 분풀이한 건 자명한 일인데. 전체 600만 명 희생자 가운데 3백만 명이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모든 폴란드인이 유태인을 구해주지는 않았다. 그걸 왜 이제 와서 윤색하려는 걸까. 폴란드에 들어선 우파 정부가 원인이다. 자기 나라를 너무 소중히 여기는 이들은 폴란드 영토에서 일어난 강제수용소와 유태인 학살의 책임자를 나치로만 표기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웃에 살고 있는 유태인을 고발하고 그 집을 차지했던 폴란드 사람들은 과거를 훌훌 털고 싶었던 것이다. 이건 폴란드의 선택이고, 이 우스운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폴란드뿐이다.
우리와 그다지 접점이 없을 것 같지만 다니 카라반의 작품은 소마미술관이 자리한 올림픽공원 조각 공원에도 있다. 세종을 위한 오마주 Way of Light이다. 올림픽을 앞둔 우리 정부의 다급한 구색 맞추기였겠지만, 이스라엘 작가가 세종을 오마주한 작품을 우리의 땅에 가질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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