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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스라엘 군대 이야기

이스라엘 군대는 사관학교가 없다. 그렇구나, 하다가 놀란다. 군대는 작전을 세우는 쪽과 이를 이행하는 쪽의 실체가 다르다. 지휘관을 키우는 기관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 모든 사병에게 지휘관의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나는 처음에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 길이 열려 있어야 하지? 군대를 지휘하고 싶은 사람끼리 알아서 하면 안 되나? 이게 핵심이다. 이스라엘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18살 시민권자는 남녀 모두 징집된다. 다른 가능성을 경험하기 전에 군대라는 선택의 기회를 인생에서 가장 먼저 얻는 것이다.

 

군대 역시 미래의 지휘관들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려깊게 인적성 검사를 실시한다. 어느 부대에 어느 역할이 맞는지 고등학교 1학년부터 스크리닝 과정을 거친다. 철없어 보이는 고등학생도 어디에서 군생활을 할지 꽤나 구체적인 고민을 한다. 인생에서 군복무 2-3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쿼드 (분대) 리더를 길러내는 훈련원생으로 이뤄진 골라니 사단의 17연대. 욤키푸르 전쟁에서 80명 중에 17명이 사망했다. 연대의 명칭은 골란의 사자אריות הגולן이다. 이스라엘은 전국에 걸쳐 추념비가 많이 있지만 헬몬 산에는 유독 많다. 희생이 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자는 전투병을 지원한다. 골라니, 짠하님, 기바티, 나할 등의 보병 연대가 있다. 이스라엘은 가을 학제이기 때문에 6월 말에 졸업하고, 한 해의 첫 번째 징집 시점이 8월이다. 어지간한 도시들에서 징집을 기다리는 청소년들이 한여름 밤에 떼를 이루어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체력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7월 한 달 동안 땀흘리는 것이다. 군복무를 기피하기 위해 신체 부위에 이상한 짓도 마다 않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여전히 실전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에서 어느 부모가 자식을 위험한 최전선에 보내고 싶겠나. 하지만 군대 안에 다양한 역할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이스라엘에서 군복무를 사무실에서 했다는 것은 떳떳하지 않다. 편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엘리트부대 전투병 출신은 대학 사회에서조차 완성형 인간으로 통한다. 어린 나이에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리더다. 그렇게 길러졌고 그 시험을 통과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내 눈에도 보이는데 인재를 고르는 인사 담당자 눈에 그게 안 보일까.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부는 오랫동안 아슈케나짐이었다. 이스라엘 군대 최고 지휘권자 라마트칼רמטכ''ל 가운데 미즈라힘은 최근 몇 명으로 좁혀진다. 여러 요인이 있다. 전투병의 절대 비율이 키부츠나 모샤브에서 나왔는데 이들이 대개 좌파 아슈케나짐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군대를 비판하는 시각에서는 뭐 하나 인정할 수 없겠지만, 좌파와 우파는 군대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다르다. 군대는 정치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지만 정치와 떨어질 수도 없다. 키부츠의 인구가 줄면서 군대의 패권은 그 중요성에 주목한 종교 시오니스트 집단에 넘어간다. 이제까지 이스라엘 군의 라마트칼 중에 공식적으로 키파를 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년 부임 예정인 23대 라마트칼 헤르찌 할레비는 키파를 쓰지 않지만 종교 시오니즘의 창시자 랍비 쿡의 후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리트 부대 경험이 성공의 기준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하기 위해 위험한 전투병의 길을 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겠지만 이후의 삶이 성공과 비슷할 가능성은 크다. 이스라엘 군대는 사람을 만든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힘이 생긴다. 가정을 벗어난 독립적인 인간관계를 쌓게 된다. 네탄야후 전 총리가 사예레트 마트칼 출신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고? 현재 이 사회의 지도자 위치에 포진해 있는 수많은 엘리트들과 피땀눈물을 함께 한 형제보다 진한 사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좋은 평가는 못 듣겠지만. 

 

많은 이민자들에게도 군대는 새로운 기회다. 에티오피아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분야가 군대와 경찰이다. 다른 사회 구조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다는 뜻이다. 게다가 군대에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먼저 대학 교육을 받게 하고 후에 군복무로 환원하는 시스템이 있다. 교육비 부담이 큰 의사나 엔지니어 같은 직업을 군대의 도움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 확실한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다리 역할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는 군인의 선발 기준인 자질 집단 (quality group, קבוצת איכות), 약자로 KABA에 대단히 민감하다. 시험은 아니고 일종의 지능 테스트 같은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치른다. 숫자로 규정되는 점수가 41-56점까지 있는데 51-56 사이면 장교 루트가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 이스라엘 군대가 사관학교를 따로 두지 않고 개인당 수천 달러가 투자되는 방식으로 지휘관을 길러내는 것은 그래야 군인으로 가장 적합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연히 실제 결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2차 레바논 전쟁, 2006년 비판적인 검토가 이뤄지고 교과 성적(표준 기준), 적합성(인터뷰) 등으로 뽑힌 장교가 반드시 성과를 내지 않는다는 우려가 힘을 얻었다. 현대전은 미리 예측할 수 없는 돌발상황에 적응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하고 부대원들과 팀웤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징병을 위한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2021년 8월 이스라엘 군은 징집 선발 기준을 교육, 인지 능력, 회복탄력성, 관리 능력, 적응 능력, 기술 및 재능 등 6가지 매개변수로 확대한다.

 

고등학교 2학년은 13개 영역에서 능력 검사를 받는 Yom HaMe'a(המיון, איתור והתאמה)를 치른다. 하루 종일 시행되는데 혼자서 컴퓨터 테스트를 치르는 부분과 그룹과 함께 테스트에 임하는 부분이 있다. 그동안 여학생만 실시했는데 이제 남학생도 치르게 됐고 두 번째 기회도 얻을 수 있다.

히브리어 실력은 이스라엘 장교의 조건이었다. 여기 양보가 이뤄졌다. 더 이상 히브리어 시험 통과 조건은 없다.  누구나 원하는 언어로 시험을 치를 수 있으며, 원격으로 진행되는 말하기와 독해 시험을 치르면 된다.


2019년 이스라엘 군의 전투병 지원자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전투병이 되려는 이스라엘 청소년의 야망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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