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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이스라엘 하누카 음식

올해 하누카는 12월 19일부터 8일간이다. 아직 6주나 남았지만 수퍼에는 벌써 수프가니야 도넛이 등장했다. 이스라엘도 겨울은 춥다. 영하 수준은 아니지만 만만하게 보다가 부실한 대비로 감기 걸리기는 더 쉬운 추위이다. 한국인은 추운 날 뜨끈한 걸 먹고 싶은 법인데 이 나라는 뜨거운 국물 먹는 문화가 아니다. 그래서 기름을 덥혀서 볶고 튀기나 보다.

 

1. 수프가니야, 도넛

미쉬나에도 등장하는 '수프간'이라는 단어에 작고 사소한 물건에 붙이는 접사 ya를 붙였다. 이런 어휘 창조 작업은 19세기 다비드 옐린이 했다. 수프간은 '마짜 와퍼'라고도 하는 넓적한 빵인데, 어근이 sponge 즉 흡수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당연히 기름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원래 밀가루를 기름에 튀기면 맛이 없기 어렵다. 동유럽 아슈케나짐은 여기에 주사기 같은 걸로 잼을 끼워 넣는데 딸기 잼이 원조라나 보다 (희한한 배합이다. 이들의 미식 기준은 우리네와 같지 않다).

 

요즘도 정통 수프가니야를 찾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미국 도넛 영향인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가격인데, 손바닥 만한 도넛 하나에 15세켈이 넘는다. 가족이 모두, 게다가 8일간 먹어야 하는데 이런 가격을 누가 감당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집에서 직접 만들면 되는데 휴일도 아니고 밀가루 반죽을 튀기는 일은 몹시 성가시다. 12월 하누카 전후로 이스라엘 베이커리계는 수프가니야 선발대회나 마찬가지다. 입소문을 타면 대목이다. 수프가니야 맛보기 투어도 활발하다. 수프가니야 열풍의 진원지인 예루살렘 카도쉬 빵집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일반 가게에서는 6개 당 25NIS인데 고급 베이커리는 그 가격에 달랑 한 개만 얻을 수도 있다.  

 

 

2. 레비바/레비봇트, 감자 팬케이크

성경 이야기에 나오는 음식이다. 사무엘하 13장, 암논의 수작으로 다말은 누워 있는 이복 오빠를 위해 일종의 푸드쇼를 벌인다. 밀가루를 가져다 반죽하고 그가 보는 데서 만들어 구운 과자가 레비보트이다. 냄비째 가져다 주어도 싫다고 하더니 침실로 들어와 직접 손으로 먹여 달라고 한다. 밀가루로 만든 과자라고 했는데 오늘날은 감자를 갈아 만든다. 동유럽 유대인들이 그 추운 땅에서 감자라는 영혼의 음식을 만났던 것이다. 이디쉬는 latkes이다.

 

뭘 모를 때, 하누카와 크리스마스가 겹친 해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했다. 내가 레비보트를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 이유를 그후 사흘이나 앓아누워서 실감했다. 감자를 씻어 갈아 기름에 튀기는 것은 하루 종일 걸릴 뿐아니라 삭신을 쑤시게 만든다. 서민의 음식들이 대부분 엄청난 노동력을 전제한다는 건 숨은 역설이다. 우리나라 전 만들기와 비슷하다. 레비보트는 감자를 간 것, 감자를 채썬 것, 튀기는 대신 오븐에 굽는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사워 크림에 찍어 먹는다.

 

3. 스핀지

기름과 튀김과 디저트의 세계에서 모로코는 거대한 축이다. 모로코 유대인 마로카임은 거의 모든 면에서 아슈케나짐의 대척점에 서 있는데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조리법이나 기본 컨셉이 수프가니야와 거의 비슷한데도 자신들만의 도넛을 고집한다. 헬라어 스폰지와 같은 어근을 쓰는 기름 먹은 밀가루빵 스핀지가 있다. 우리나라 꽈배기와 아주 비슷하지만 더 깊은 기름에 오래 절인 맛이다.

 

 

4. 쉐바키야

쉐바키야가 1번이 되지 못한 건 순전히 수치심 때문이다. 쉐바키야를 사거나 먹는 건 되도록 들키지 않는 게 좋다. 건강에 좋지 않고 살만 찐다는 폭풍 잔소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여기 있는 음식 전부 좋은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거 매년 챙겨 먹는 이스라엘은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장수하는 나라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보다 설탕이 낫다는 뜻이 아닐까. 그리고 모로코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사람들로 꼽히는데 아무래도 설탕을 원없이 먹어서가 아닐지. 

 

모로코 쉐바키야는 장미 모양이 선명하고 참깨를 잔뜩 뿌린다. 유대인은 반죽을 대충 돌돌 말아 익히고 깨도 소량이다. 대신 설탕물에 오래 담궈 놓는다. 우리나라 타래과는 어떤 경로에서인지 쉐바키야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본다. 그게 언제 어떻게였을까. 우리나라 한식은 독특함만 내세울 게 아니라 이런 영향사를 좀 연구해 주면 좋겠다. 

 

5. 자흐눈

예멘의 항구 도시 아덴의 유대인들이 가져온 음식이다. 원래 예멘 음식은 기름과 관련된 음식이 많다. 미식가치고 기름을 마다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자흐눈은 밤새 요리해서 샤밧 아침에 먹는 음식이지만 평소 먹지 않는 사람도 하누카가 다가오면 생각난다.

밀가루 반죽에 마가린 혹은 버터를 발라 한겹한겹 쌓아올려 약 3센티미터까지 만든다. 100도 아래에서 10시간 정도 굽는 슬로우 쿠킹이다. 맛은 기름에 절인 밀가루 맛이다. 퍽퍽해서 토마토 소스를 찍어 먹거나, 자흐눈과 함께 넣었던 삶아진 계란을 곁들인다. 길쭉한 사각형 모양인데 뭘 모르고 하나 통째로 먹다가는 낭패다. 잘라서 조금 먹고 끝내야 한다.   

 

6. Lokshen Kugel, 계란 푸딩 캐서롤

오븐에 넣고 오래 익히는 캐서롤을 이디쉬로 Kugel이라고 한다. 쿠겔이 아니라 퀴글이다. 달걀로 만든 누들이 Lokshen이다. 요즘은 이트리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때 누들이 우리가 아는 면류보다는 파스타에 더 가깝다. 에그 누들을 익히고 사워 크림, 계란, 버터, 설탕, 코티지 치즈와 섞고, 말린 과일, 꿀, 계피를 첨가한다. 피칸 등 넛츠로 토핑을 얹기도 한다. 맛은, 왜 이렇게 섞을까 희한할 정도로 다양한 맛이 난다. 단 맛이 압도적이지만 그렇다고 안 짜지도 않다. 독일에는 구겔후프트라는 케이크가 있는데 록센 퀴글에 영향을 주었다 해서 놀랐다. 둘이 무슨 상관인지. 

 

 

7. 하누카 겔트

하누카에 주사위סביבון 놀이를 하는데 주사위 사면에 네스 가돌 하야 샴 נס גדול היה שם '거기 큰 기적이 일어났다'의 네 머릿글자가 써 있다. 이 주사위 놀이에서 포장된 초콜렛을 사용해 일종의 패로 이용한다. 겔트는 '돈'이라는 뜻이다. 하누카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주들에게 공식적으로 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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