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aily life in Israel

이스라엘 나무 이야기

솔로몬 왕의 업적 중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한 것이다(왕상 10:27). '평지'란 지형적으로 낮은 저지대 '쉐펠라'를 가리킨다. 게젤, 람레, 롯, 르호봇 등이 현재 쉐펠라의 주요 도시들이다. 뽕나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쉬크마'이다. 영어로 sycamore, 플라타너스 계열이다. 우리의 뽕나무와는 비슷하지도 않다.

왼쪽이 뽕나무 오디, 오른쪽이 쉬크마 열매이다.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는 뽕나무를 재배하던 사람בולס שקמים이었다. 먹지도 못하는 열매를 따다가 아무스는 뭘한 걸까.

 

예루살렘은 1967년 6일 전쟁으로 동서 병합을 이루고 나서 이 도시를 대표하는 노래를 선정한다. 나오미 쉐메르가 작사작곡한  '예루살라임 쉘 자하브'이다 (표절 혐의가 있다). 독특한 슐리 나탄의 음색 때문에 듣고 나면 금새 눈물이 떨어질 것 같지만 가사 자체는 비장하지 않다. 예루살렘이 자하브(금), 네호쉣(구리), 오르(빛)의 도시라는 것이다. 이 노래에 나무가 한 번 등장하는데 오라님, 소나무들이다. 예루살렘에 오라님이 있나? 유다 산지에 많다. 해발 800미터 꼭대기(!)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골짜기에 소나무 오라님이 빽빽하다.  

 

"산 공기는 포도주처럼 신선하고, 레아흐 오라님, 소나무들의 향기는 벨소리와 함께 해질녁 바람에 묻어나네"

슐리 나탄 목소리가 예루샬라임 쉘 자하브 그 자체이다. 더운 여름 해가 지려 할 때 예루살렘에 불어오는 바람은 정말!

 

1901년 세워진 KKL-JNF는 오토만 술탄에게서 땅을 구입해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유다 산지와 칼멜 산에 숲을 조성하는데 소나무 등 침엽수 위주로 심었다. 빨리 자란다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게 다였을까. 아마 성경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다. 하나님이 광야에 침엽수를 심으신다고.

אֶתֵּן בַּמִּדְבָּר אֶרֶז שִׁטָּה, וַהֲדַס וְעֵץ שָׁמֶן; אָשִׂים בָּעֲרָבָה, בְּרוֹשׁ תִּדְהָר וּתְאַשּׁוּר--יַחְדָּו. 내가 광야에 백향목, 싯딤나무, 화석류, 올리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사이프러스와 티드하르와 테아슈르를 함께 두겠다 (사 41:19). 

우리말 성경은 사이프러스는 잣나무, 티드하르는 소나무, 테아슈르는 황양목이라고 번역한다. 히브리어 티드하르와 테아슈르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광야에 샘이 넘쳐 흐른다면 사막도 푸르러질 테니 침엽수 종일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소나무의 솔방울에서 만들어지는 게 잣pine nut이다. 원래부터 궁금했다. 왜 우리말은 소나무에서 잣이 나는 걸까? 잣나무도 따로 있는데. 이스라엘 잣은 소나무에서 난다.  

 

한편 텔아비브는 오늘날 현대적인 이미지와 달리 도시 자체는 몹시도 구시대적이다. 다 작고 좁다. 1909년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텔아비브의 별명이 간 하쉬크밈, 쉬크마 정원이다. 좁은 도시 골목마다 쉬크마가 가로수 역할을 한다. 쉬크마는 뿌리가 몹시 튼튼하게 뻗어나가는 특징이 있는데 그래서 툭하면 보행로가 쪼개지는 부작용이 따른다. 건물에도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한다. 뭐 그래서 어쩌겠다는 대책은 듣지 못했다.

텔아비브의 노래는 남성적이다. 아릭 시나이가 불렀지만 여자 가수가 불러도 마찬가지다. 켄 제후, 켄 제후, 제 간 하쉬크밈, 하유 감 카엘레 에아즈 바야밈, 그래 그거야, 그게 쉬크밈의 정원이야. 이런 게 전에도 있었지. 

 

동해물과 백두산에 이어 남산 위 소나무가 나오는 것처럼 한 나라의 지형과 나무는 민족적 감정을 일으킨다. 이스라엘의 국가 나무는 공식적으로 올리브, 감람나무이다. 지형이 비슷해서 원수지만 시리아도 국가 나무는 같은 올리브다. 레바논은 국기에도 그려지는 백향목이다. 요르단은 도토리를 맺는 알론, 상수리나무이다. 

 

볼품에 있어서 레바논 백향목 오레즈를 따라갈 나무는 없다. 독야청청이란 표현이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알론도 꽤 늠름하다. 다람쥐가 좋아하는 도토리를 열매로 맺는다. 하지만 볼품이 어쨌든 에레츠이스라엘에 가장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는 나무는 올리브나무, 자이트가 맞다. 탈무드에는 수확철에 부는 남풍과 북풍 이야기가 나온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밀이 익는 데 도움을 주지만 대신 올리브 나무에 꽃이 피는 걸 방해한다 (올리브 나무에 꽃이 피나?). 남풍은 그 반대로 밀 익는 데는 좋지 않고 올리브 꽃에 좋다. 그래서 성전의 성소에서 밀로 만든 진설병은 북쪽에 두고, 올리브 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메노라는 남쪽에 두었다고 한다. 

 

에레츠이스라엘의 알론은 두 종류다. 알론 마쭈이와 알론 타보르이다. 타보르 오크가 훨씬 크고 늠름하다. 알론 마쭈이는 오크라 부르는 게 민망할 정도로 얇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가 멸망해도 남은 자가 있게 된다고 하는데, 엘라와 알론이 베임을 당해도 그루터기가 남는다고 표현했다. 두 나무 모두 우람한 편이 아니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이 밤나무와 상수리나무(일반적으로 웅장한 나무 이름)로 옮기면서 무슨 소린지 오리무중을 만들었다. 그림이라도 옆에 있어야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엘라는 에메크 하엘라, 즉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골짜기 이름이기도 하다. 가느다란 작대기 같은 나무이고 열매가 빨갛다. 영어로 Terebinth이다. 

 

포도를 맺는 포도나무 게펜과 대추열매를 맺는 종려나무 데켈도 이 땅에 소중하다. 아랍어는 종려나무 데켈에 대해 "발은 물에 머리는 불에 있다"고 표현한다. 종려나무는 수확철에 엄청난 양의 물을 빨아들여 열매를 빨갛게 익힌다. 대추열매 타마르는 히브리어 탐루르, 즉 sign이란 뜻이다. 붉기 때문에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아가서는 사랑하는 여인의 늘씬한 키와 풍만한 가슴을 데켈과 타마르에 비유한다(아 7:6). 종려나무들로 빽빽히 서 있는 사막을 보고 있자면 새삼 애틋한 마음이 든다. 

 

사사기 9장에는 요담이 말한 나무에 관한 우화가 나온다. 여룹바알 즉 기드온이 죽자 아비멜렉은 돈으로 세겜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형제 70명을 죽인다. 그중에서 살아남은 막내 요담은 그리심 산 꼭대기에서 세겜 사람들에게 우화를 이야기한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에게 나무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했지만 제각각 자랑할 것이 있는 나무들은 이를 거절한다. 감람나무에게는 기름이, 무화과나무에게는 단것이, 포도나무에게는 포도주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왕이 되라는 청을 받은 것은 가시나무였다. 아무 유익도 없는 볼품없는 가시나무는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린다. 아비멜렉이 세겜을 불사르게 되리라는 저주였다. 과연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으로 인해 쓸데없는 전쟁에 휘말리고 아비멜렉은 망대에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맞아 죽는다. 

  

포도밭에는 망대 쇼메라가 서 있다. 탈무드에 따르면 포도밭은 팔아도 거기 함께 있는 망대나 포도주틀은 팔지 못하게 되어 있다. 쇼메라는 아랫부분은 돌로 짓고, 윗부분은 지푸라기 등으로 pergola를 만든다. 페르골라 위에서 무화과나 포도를 말렸다.

 

모디인 근처에 네오트 크두밈이라는 곳이 있다. 성경 식물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나무와 꽃 등 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성경책 들고 훌쩍 다녀오기 좋다. 세상 고요해서 머리 식히기도 좋다. 이제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 온갖 꽃과 허브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래서 겨울에 아가서를 읽게 된다. 

'Daily life in Isra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예루살렘 테러  (0) 2023.02.11
일요일 아침 텔아비브 기차역  (1) 2023.01.22
수리남 회당  (0) 2022.11.04
유대인의 빵 할라  (0) 2022.10.22
텔아비브, 그라피티의 거리  (0) 2022.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