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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너리 옵션 사기

한때 경제학도로서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섭다. 코인에 이어 바이너리 옵션에 손대는 사람들이 나만 바보인 것처럼 한심해한다. 바이너리 옵션이 도박과 뭐가 다른지 난 모르겠던데. 아무튼 한국에선 어떤지 모르지만 지난 10년 간 전 세계 바이너리 옵션의 핫스팟이 알고 보니 이스라엘이었다. 

 

TOI의 시모나 와인글라스는 2015년 처음 취재를 시작하고, 2017년 이스라엘 크네셋의 금지법 제정까지 이끌어냈다. 아직도 바이너리 옵션에 아무 규제가 없는 나라들이 많은 데 비해 참 바람직한 사례다. 

 

텔아비브 아얄론 고속도로 변에 서 있는 엘렉트라 건물, 라마트간 모세 아비브 타워(이스라엘 최고층빌딩)에 바이너리 옵션 회사들이 들어 있다. 빌딩 이미지 대폭락 어쩔.

 

탐사보도의 정석과도 같은 TOI의 기사를 읽으며 놀란 지점들이 있다.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던 건데, 이스라엘, 특히 텔아비브란 도시가 얼마나 화이트 범죄에 최적화된 장소냐는 점이다. 교육 수준 높고 영어 자유롭고, 무엇보다 해외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고, 월급 대비 생활비가 높기(PDF)로 도쿄에 이어 두 번째인 도시에서 사람들은 자본의 유혹에 약하다. 일반화는 위험하지만 이스라엘에 남달리 유행하는 범죄가 사기다. 틴더 사기꾼이 이스라엘 출신인 게 우연이 아닐지도.

 

이스라엘의 바이너리 옵션 회사들은 다양한 언어에 능통한 직원들을 콜센터에 앉히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바이너리 옵션이라는 금융 상품에 투자하도록 설득했다. 고객이 돈을 보내 예금을 하고, 그 돈을 사용해 거래를 하게 한다. 가격이 오르냐 떨어지냐만 맞추면 된다. 맞으면 30~80% 이윤이 나고, 틀리면 모든 돈을 몰수당한다. 이게 투자상품으로 소개되고, 콜센터 직원은 브로커로 포장됐지만 사실상 도박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더 많은 거래를 할수록 예치금을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콜센터는 전 세계 고객에게 그들의 현지 전화번호를 표시하는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 기술도 사용했다. 이 회사가 이스라엘에 있다는 건 어딘지 비밀이었다. 회사의 CEO가 누군지, 보스의 성이 뭔지도 알 수 없었다. 콜센터 브로커들은 경력을 거짓말했고, 고객에게 현명한 거래보다는 실패한 예측을 해서 돈을 잃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고객이 투자를 접으려 하면 각종 문서 요구로 시간을 끌면서 최대한 지연했다. 자금을 동결하는 고객도 없지는 않았지만 판매원의 실제 이름이나 하다 못해 회사의 위치도 몰랐기 때문에 투자 원금을 돌려받을 길 자체가 없었다. 

 

소셜네트워크의 이스라엘 이민자들 사이에서 forex/biniary option은 이미 유명하다. 미국 정부는 이미 2013년 바이너리 옵션 마케팅을 불법화했고, 미국 외의 지역에서 거래는 사기성에 더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하 금융 시장이 그 일을 대신해 온 것인가. 이스라엘은 거의 10년 동안 바이너리 옵션에 대한 아무 규제도 없었다. 유럽 역시 아무 규제가 없어서 이스라엘 회사들은 대개 키프로스를 회사 주소로 두고 있다. 

 

고객을 유치하는 방법은 구글지도로 사람들의 집을 찾거나, 신용 카드 정보를 확인해서 얼마나 부자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또 교육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데스크탑을 공유하게 만들고, 그 액세스 권한을 남용해 음란물이나 온라인 슬롯 등을 이용했는지 알아본다고 한다. 강박 행동의 징후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2014년 11월, Ariel Marom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이스라엘 국회의 재무 및 윤리 위원회에 편지를 보냈다. 금융 서비스를 담당하는 규제 기관과 재정위원회가 이스라엘에서 진행중인 국제적 규모의 약탈, 절도, 사기, 돈세탁 등 범죄의 물결을 막기 위한 즉각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편지였다. 편지는 이 외환 산업이 많은 국가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적 테러리즘"이라고 묘사했다. 만약 이 정보가 언론의 조사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면 세계에서 이스라엘의 위상이 손상될 것이며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의 물결을 일으켜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물론 아리엘 마롬이라는 이름은 발견되기를 원치 않는 가명일 가능성이 크다. 

 

암튼 덕분에 온라인 금융 거래 산업을 규제하는 새로운 법률이 2015년 5월에 발효되었다. 바이너리 옵션 회사들의 반대가 거셌다. 외국인 고객에게는 아예 상품 제공이 불가능하고 이스라엘 고객에게 제품을 제공하려면 ISA (Israel Securities Authority)에 라이선스를 요청해야 한다. 21개 회사가 라이센스를 요청했다. 그 중에 Aviv Talmor는 신청 자격이 철회됐는데, 키프로스로 도피했다가 이스라엘로 돌아와 가택 연금됐기 때문이다. 올해 초 4년 형을 받았는데, 2200만 달러를 사기쳤지만 자신이 이익을 보지는 못했다는 이유로 벌금은 고작 8만 달러. 하튼 ISA는 라이센스 요청 지원자를 검토해 이들을 완전히 규제되는 회사로 만들거나, 운영을 중단시킬 방침이다.

 

 

전설적인 사기꾼 Gilbert Chikli 사건을 다룬 프랑스 영화, 난 널 믿었는데. 프랑스 유대인 중에 이스라엘로 이민한 사람들이 갑자기 늘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열심히 땀 흘리는 대다수를 쉽게도 능욕하는 한 사람의 돌출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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