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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in Israel

물리치료

한국에서 손목이 부러졌다. 이건 병리적 관점에서 내린 최종 결론이고, 낙상 당시 얼굴을 긁히며 머리에서 피가 났기 때문에 내 관심은 뇌가 다쳤는지 여부였다. 사람이 이렇게 걱정을 사서 한다. 아무튼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을 갔는데,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참, 대단하긴 했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구급대원이 증상을 읊조리고 사명감에 가득찬 표정의 의료진이 환자를 급히 이송하는 일은 없다. 환자는 원무과 등록이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아무튼 그렇게 들어간 응급실에서, 무력한 나는 의료진이 제안하는 모든 검사에 동의했다. 거기에는 머리 CT, 손과 발 X-ray 등이 포함됐다. 걱정을 사서 했다니까. 손목이 부러진 것 같긴 한데 너무 희미하다고 해서 손은 CT도 다시 찍었다. 나는 이스라엘로 돌아와야 하니까 이 자료들을 챙겨와야 했는데, CD로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단다. 이 대목에서 나는 부글부글 했다. 내 돈 내고 찍은 자료를 받는데 왜 또 돈을 내야 하나. 자료를 CD에 담아주는 병원 직원의 노동을 따로 산정하는 근거가 뭔가. 한국 사회가 아직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없고, 일단 빨리 나아야 하기 때문에 병원이 하라는 대로 했다. 여기서 또 놀란 점이 있는데, 한국 의료 시스템은 일단 환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손목이 부러지긴 했지만 얼굴과 무릎에도 상처가 컸는데, 누구도 어디로 가서 무슨 치료를 하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물어보면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한다. 일단 손이 문제니 손 정형외과로 갔다. 전문의는 흡사 AI의 화신 같았다. 무슨 질문을 하든 본인 할 얘기만 줄줄이 읊고 이내 그만 가보시란다. 3분이나 걸렸나? 네? 그럼 얼굴이랑 무릎은요? 원무과에 가서 물어보란다. 질문을 더할 것 같자 간호사가 들어와 나를 서둘러 내보낸다. 그 표정만 보고도 알았다. 그들에게 나는 진상 환자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끔찍이도 내 몸을 걱정하는 나는 얼굴은 피부과에, 무릎은 통증학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나중에 카드값을 보니 몇 십만 원이 들었다. 약처방은 기이할 정도로 친절해서 몇 주씩 타왔는데 그게 그렇게 오래 약 먹을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렵게 비행기를 타고 이스라엘에 왔다. 다음날 가정의한테 가서 일을 쉬어야 한다는 증명서를 받았다. 이게 있어야 휴가를 받는다. 한국에서 5주 진단을 받았는데 이미 2주가 지난 시점이라, 3주 휴가가 가능했다. 인터넷으로 올려도 되는데 굳이 직접 휴가서를 내러 갔다. 속으로야 이를 갈았겠지만 푹 쉬고 오란다. 

 

손 전문 정형의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일반 정형외과 의사가 먼저다. 첫마디가 뭐하러 CT까지 찍었냐는 거다. 이스라엘 아니고 한국에서 찍었다고 하니까, 쓸데없는 짓은 국경이 없구나 하는 표정이다. 아직 지지대를 하고 있는 손을 펴라고 하더니 예고도 없이 누른다. 악 소리를 낼까말까 고민하는 동안, 벌써 진료가 끝났다. 저기요, 나는..걱정이 많다니까? 손끝이 저릿저릿하고 통증이 심하다고 하자, EMG, Electromyography 근전도 검사를 하라고 하프나야를 써준다. 그래도 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걸 보았는지 한마디 한다. 안 죽어요.

 

손 전문 정형의는 세 달을 기다려야 한단다. 죽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3주 휴가는 이미 2주로 줄어 있었다. 거의 다 나은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 손목은 이제 안 해도 되는 지지대를 장착하고 아파 죽겠는 얼굴로 직접 쿠파트홀림에 갔다. 장애인은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터라 경비의 도움까지 받아 창구로 갔다. 일주일 후로 예약이 됐다. 더 기다릴 수는 없어 물리치료도 예약했다. 

 

이스라엘은 여기까지가 모두 공짜다. 쿠파트홀림에 포함돼 있다.  

 

 

내가 사는 도시의 물리치료 센터는 악명 높은 관세청 건물에 세들어 있다. 매년 저기 가서 소득세 신고를 해야 한다. 와, 새삼 울분이 치솟는다. 근처에는 그 울분을 다스리라는 뜻인지 공원도 있다. 약주고 병주고 다 한달까.

 

이 창살은 감옥의 은유인가?

 

창구에 가서 무슨 일로 왔다고 하면 물리치료사가 와서 데려간다. 환자가 몰리면 소음이 크다.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은 여기서 이런저런 도구를 사용해 몸을 추스린다.   

 

전기 치료도 하고 도구를 사용해 손을 움직여 보다가, 마지막은 이곳에서 파라핀 처치를 한다. 일하는 분이 와서 일정 시간마다 와서 수건도 빨아 탈수하고, 파라핀도 첨가한다. 저 파라핀 통에 손을 몇 차례 담궜다 빼고는 비닐로 덮고 10분쯤 기다린다. 물리치료 받은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물리치료사와 재활치료사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난다. 재활의학 분야에서 이스라엘은 놀라울 정도로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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