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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ed

6월의 결혼식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은 정통파 랍비가 주도하는 결혼식만 올릴 수 있다. 다시 말해 정통파 랍비한테 주례비를 내야 한다. 알지도 못하는 랍비가 자신들의 성혼 선언을 한다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이스라엘 젊은이가 많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데 그게 할라하이기 때문이다. 이민자 중에 유대인 여부가 모호한 경우(aka. 구소련 출신)는 할라하 결혼을 아예 하지도 못한다.

 

세속인 중에는 절대 결혼식에 랍비를 부르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결국 고집을 접는 경우라면 결정적 이유는 대개 조부모들 때문이다. 결혼식만큼은 유대인답게 올리기를 바라는, 곡절 많은 삶을 지낸 윗세대의 소망을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3세대쯤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부모들의 소원이야 자식이 꺾기가 어렵지 않다.

 

이스라엘의 결혼식 시즌은 6월이다. 정확히 말하면 샤부옷 이후이다. 할라하는 유월절에서 샤부옷까지, 오메르 기간 50일 동안 결혼식을 금지한다. 농사철이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절치부심 아니었을까? 새신랑은 1년간 놀아야 하는 게 토라의 명령이니까. 또 티샤 베 아브, 성전멸망일을 앞둔 3주간은 유대교에서 가장 심각한 애도의 기간이라 결혼식이 금지된다. 그 중간에 있는 6월에 거의 매주 결혼식 초대장이 날아드는 이유이다. 

 

초여름 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배기에서 열린 결혼식장이다. 하바트 알렌비, 1차 세계대전 당시 알렌비 장군의 영국군 본부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원래 독일 남부 스와비아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 루드비히 슈넬러가 세운 농업학교였다. 예루살렘에 시리아 고아원(마론파 기독교 어린이들을 위한)을 세운 선교사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주례가 여성이다. 개혁파 유대교 여성 랍비인 줄 알았는데, 그냥 신랑 옆집 사는 분이란다.ㅋ 한동네 출신인 신랑신부는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일주일 휴가 내고 와서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대안 결혼식이다. 정통파 랍비도 없고, 크투바도 없고, 예루살렘에서 어쩌고도 없다. 유리병은 신랑신부가 같이 깼다.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편지를 길게 썼는데, 음, 역시 평범한 사랑 이야기는 지루하다. 재벌도 없고 신델렐라도 없으니.  

 

식이 끝나면 식사를 한다. 왜 이렇게 캄캄하냐고? 메인 요리인 고기나 생선이 나오기 전에는 그나마 저 조명을 꺼버린다. 

 

춤을 추느라고. 신랑 신부 집안이 모두 아슈케나짐인데도 음악은 미즈라히. 귀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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