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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와 프리츠 그륀바움

비엔나의 카바레 스타였던 프리츠 그륀바움은 에곤 실레의 작품 81점을 비롯한 400점 이상의 콜렉션을 소장했다.

 

1880년 태어난 그륀바움은 노래하고 작곡하고 무성 영화를 연기하고 연출하는 직업을 가졌다. 정치 활동으로도 유명했는데, 1910년 오스트리아 장교가 반유대주의 발언을 하자 그와 결투를 벌여 부상을 입었다. 1930년대 그륀바움의 공연과 주간 칼럼은 나치에 대한 비평으로 유명했다.

 

1938년 아내 엘리자베스 헤르츨과 함께 나치에 체포됐고 컬렉션을 아내에게 넘기는 위임장에 서명하고 다카우로 보내져 1941년 사망했다. 엘리자베스는 남편이 미술품 컬렉션을 나치에 자발적으로 넘겼다고 주장하는 서류에 서명하고 1942년 벨라루스의 말리 트로스테네츠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녀 없이 사망한 그륀바움에게는 사촌의 손자 Timothy Reif가 남았다. 라이프는 또 다른 친척 데이비드 프랭켈과 함께 25년에 걸쳐 그륀바움의 콜렉션을 회수하기 위한 법적 투쟁을 하는 중이다.

 

에곤 실레의 작품들이 전 세계에 유통된 계기는 에버하르트 코른펠트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치의 아트 딜러 역할을 했으리라 추정되는 인물이다. 그가 꺼내 놓은 작품은 그륀바움 콜렉션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재산권 분쟁이 터지면서 나머지 작품들의 행방은 미궁속으로 빠졌는데, 코른펠트는 올해 4월 사망했다.

 

라이프와 프랭켈은 그륀바움 컬렉션이 나치 당국에게 강탈됐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투쟁해야 했다. 코른펠트의 영향력만큼이나 멀리 뻗어나간 소유권 보유 기관들이, 그륀바움이 컬렉션을 자발적으로 내놓았다는 주장을 선호한 것이다. 비엔나 미술대학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아돌프 히틀러의 작품 보는 안목이 그저 고상했을 뿐인가. 나치에 투옥된 사람이 서명한 위임장이나,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예술품 컬렉션을 작성하는 데 동의한 아내의 서명이 합법적이라는 주장은 홀로코스트의 진실 공방에서도 중요했다. 

 

 

2005년 법정 투쟁을 시작한 작품이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여인'으로 공방은 7년이나 지속됐다. 2012년 소유권을 주장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는 이유로 결국 패배했다. 

2014년 최초로 승리한 작품이 Town on the Blue River이다.

2022년 드디어 Tote Stadt III이 반환된다. 체스키 크롬로프를 그린 수채화다. 법적 공방이 시작됐을 때, 박물관은 이 작품을 넘긴 사람이 엘리자베스의 여동생 마틸데 루카스라면서, 엘리자베스가 컬렉션 일부를 벨기에로 가져가 여동생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소유주가 루돌프 레오폴드가 세운 레오폴드 박물관이었던 것이다. 비엔나에서 가장 비위가 상하는 곳이다. 베를린은 자기 반성이라도 하지, 저 도시는 정말. 암튼 뉴욕 항소 법정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위임장에 서명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문서를 작성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고 밝혔고, 작품을 양도했더라도 소유권을 전달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미미국에서조차 상식이 승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짧지 않았다. 

 


2022년 10월, 그륀바움의 법적 상속자들은 에곤 실레의 두 작품을 자선 목적으로 경매에 부친다. '얼굴을 숨긴 여인'과 Woman in a Black Pinafore(1911)다. 피나포는 제인 에어 때문인지 고아원 유니폼 같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에곤 실레 이후 페인트 만지는 이들의 대표적인 허세 아이템이 된 것 같다. 이 두 작품의 판매금 약 2백만 달러로 Grünbaum Fischer 재단이 설립됐다. 소외된 공연 예술가를 지원하는 재단이다. 

2023년 뉴욕 현대미술관, 모건 도서관, 밸리 사바스키 트러스트, 로널드 로더 컬렉션, 산타바바라 미술관 등에서 에곤 실레의 작품 7점이 압수됐다. 나치의 약탈품이라는 증거가 제시되자 박물관들이 자발적으로 내놓았다. 

 

맨하튼 지방 경찰청이 법적 상속자에게 반환될 예정인 압수된 작품을 공개했다. 뜻밖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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