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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트 카마, 네게브

어제 비도 쏟아졌는데 오늘은 완연히 봄날씨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네게브의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어쩌다 보니 네게브 순회가 됐다. 키부츠와 모샤브들이 키우는 복숭아 나무들에 꽃이 만발이다. 이스라엘 농부들은 복숭아에 엄청난 애정을 쏟기 때문에 진작부터 새의 공격을 피해 전부 망을 쳐놓는다. 복숭아꽃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원에 복숭아 나무를 심어 놓으면 좋다. 

  

정원이 있는 건 참 좋은 일인데, 도심이 아닌 모샤브의 정원은 초봄에 깨어난 뱀들의 방문을 받기가 쉽다. 남의 집 고양이들조차 잘 대접해야 하는 이유다. 자기 집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안 들어온다. 

 

베이트 카마로 가는 길은 일년 중 2-3월이 가장 아름답다. 원래 네게브의 2월은 다롬 아돔 축제 때문에 사람들로 매우 붐비고 차가 막히는 법인데, 전쟁중이라 텅 비어 있다. 다시금 느끼지만 네게브는 참, 아름답다. 정확히 말하면 북부 네게브다. 다윗이 헤브론 일대를 도망다니다가 갓으로 망명해, 배신자 낙인이 찍혔는데도 자기 백성을 위해 원수들을 공격했던 아비멜렉의 땅, 그랄이다.

 

카마는 히브리어로 서 있는 곡식단을 뜻한다. 동사 쿰 자체가 일어서다란 뜻이다(아람어 달리타 쿰에서 그 '쿰'). 요셉의 꿈에서 형제들은 밭에서 곡식단을 묶는데, 그건 알루마אלומה다. 낫으로 베었을 때 한 손에 들어오는 묶음 정도? 그 묶음들을 모아서 세워둘 수 있게 한 게 카마다. 유월절 안식일에 처음 수확한 곡식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하는데 그건 오메르다. 이 오메르를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을 채우고 그 다음날까지 셈한 게 칠칠절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월절부터 칠칠절까지 기간을 오메르 기간이라고 부르고 그중 33일째 되는 날이 시므온 바르 요하이의 기일인 '라그 바 오메르'다. 오메르가 알루마나 카마를 포괄하는 집합명사다. 수확이 끝나고 짐승에게 주는 짚은 테벤תבן, 동물 사료로 모아놓은 hay 건초는 하찌르חציר다. 

 

 

카마에서 떨어지는 낟알들은 트부아תבואה다. 히브리어의 사용자는 목축업자의 자손으로 약속의 땅으로 들어와 농사꾼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이 두 산업과 관련된 어휘가 어마어마하다. 사농공상 DNA로는 따라가기가 벅차다. 분명 우리말도 반만 년 농경사회였으니 정밀한 어휘들이 있을 텐데, 우리말 성경은 카마와 알루마와 오메르를 전부 곡식단이라 옮겨 놓았다. 번역자가 게으른 거일 수도 있지만, 우리말 자체가 '뭣이 중요한디'라는 명분에 빠져 실사구시를 무시해온 결과다. 

카마의 집, 베이트 카마는 1949년 세워진 키부츠다. 오래된 집들은 대개 이런 양식으로 세워졌다. 요즘 세상에 농사 지어서 먹고 살기가 쉽지 않기에, 베이트 카마는 1990년 바이오약품회사 카마+마다=카마다를 세운다. 하지만 베이트 카마를 유명하게 한 건,  상장까지 한 바이오 회사가 아니다.    

 

누리트가 운영하는 브런치 카페 누리타다.  

 

10월 7일 테러 당시 키부츠 니르 오즈에서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간 사샤의 사진이 '카마' 위에 걸려 있다. 오후 3시만 되면 친구들과 커피 브레이크를 갖곤 하던 사샤의 습관대로 매일 오후 3시,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임이 있다.

 

다롬 아돔은 팔자 좋은 꽃놀이 정도가 아니라, 네게브 사람들의 생계와 직결된 비즈니스 프로그램이다. 5개월 넘은 전쟁으로 이곳 사람들은 일상이 망가졌을 뿐만 아니라 생계조차 막막하다. 18년 동안 이어온 네게브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게 안타까워 누리트가 자기 카페를 열었다. 찾는 사람들이 없으면 다 부질없는 일이 되겠지만, 멀리서도 누리타를 응원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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