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입추는 8월 초순이고, 여기서 45일쯤 지나면 일평균 기온이 20도 이상으로 다시 오르지 않는 추분이 온다. 가을은 그때부터가 제대로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24절기 같은 것은 없지만 가을이 왔다는 신호는 분명하다. 바로 이 식물 때문이다.
이름이 חצב 하짜브이다. 이 하얀색 꽃이 길게 올라오기 시작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 가을이구나 느낀다. 가을을 느낀다고 별수 있나 싶지만, 이 짧은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력은 치열하다. 샤밧마다 트래킹을 나서는 사람들로 전국이 들썩거리기 때문이다. 길보아 산과 해안평야들은 이 시기에 그야말로 핫스팟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하짜브일까. 하짜브는 땅을 파서 돌을 캐는 채석장의 활동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 건조한 땅에서 물을 찾아 뿌리를 뻗어내리는 이 식물의 엄청난 생명력에 주목한 이름이다. 영어로 squill이라고 하는데 식물을 좀 아는 사람은 Drimia 종이라는 걸 알아챈다. 헬라어 δριμύς 드리무스의 여성형으로 bitter, acid라는 뜻이다. 이 식물의 쓴 맛에 주목한 이름이다.
하짜브는 구근이 살아남아 매년 꽃을 피우는 geophyte 식물이다. 당근, 생강, 마늘이 대표적인 geophyte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종의 열매를 사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에너지를 구근에 담아두고 시간의 대부분을 인고하며 기다리다 자신에게 맞는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 식물. 이 찰라의 꽃이 피우기까지 인고의 세월이 있었음을, 그리고 어떤 종류의 힘겨움이라도 결국 지나갈 것임을 보여주는 시청각 교재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땅의 가을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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