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헬기 사고로 대통령이 죽은 나라는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이란은 85세의 알리 하메네이가 다스리는 신정국가다. 알라의 뜻을 받드는 나라라는 모양이다. 하메네이의 직함은 영적 지도자, 영어 발음으로 아야톨라다. '선지자'는 무함마드로 끝난 거니까. 알라가 선택한 영적 지도자의 타이틀은 위계 질서가 꽤나 엄격하지만 무슨 수로 그 자리에 적합한지 검증은 어려운 법이다. 이란에서도 하메네이가 아야톨라가 될 만한지 아닌지 분란이 없지 않다. 물론 이의 제기를 하면 처벌을 받는다.
아야톨라는 국가 원수로서 외교 안보 문제에 전권을 갖는다. 대통령은 이슬람 공화국의 지도자로서 국정 관리를 하면서 경제 분야를 책임진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국가안보 최고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신정정치인데, 경제 정책의 실패는 왜 국가 원수의 책임이 아닌가.
2021년 6월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이란의 경제 정책은 3년 내리 줄줄이 실패했다. 대통령을 통제하는 매파들조차 라이시의 무능을 비난했었다. 그게 대통령의 문제만은 아닐 텐데도. 2022년 9월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안 썼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맞아 죽자 시위가 일어나 정국이 어수선했다. 하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진압됐다. 라이시 대통령이 원래 이쪽 분야 전공이다. 1988년 이란 정치범들이 대량 처형될 때 테헤란 검찰청장이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성공한 이래, 이란은 10년에 한번씩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1988년, 1999년, 2009년 모두 나라가 뒤흔들렸다. 2019년은 용케 잘 넘어가나 했더니 2022년 사건이 터진 것이다. 대개 대통령직 선거와 궤를 같이 한다. 중임직인 대통령은 어지간하면 8년씩 하는데, 매번 인물이 바뀔 때마다 시끄럽다. 내 기억에 선명한 건 2009년 그린 혁명이다. 당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고 결과를 발표했는데, 야당인 무사비 진영은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며 무효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아흐마디네자드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권리가 있다며 오바마에 맞섰고, 국내 문제에서는 어지간한 정치범을 전부 사형대로 보내서 유명했다. 그래도 성직자는 아니었다.
갑자기 북한이 돌풍을 일으켰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 고전한 이란은 2009년 6월 17일 마지막 예선을 대한민국과 치렀는데 이때 이란 (침대) 축구의 자랑 알리 카리미가 녹색 혁명의 상징을 손목에 단 채 경기에 나섰다. 알리 카리미는 2022년에는 두바이에 살면서 팔로워 1500만 명인 셀럽으로서 시위대를 지지했는데, 덕분에 이란 정부에 선동죄로 고발됐다. 이란 정부에 의해 입국 금지중이다.
2024년 6월 28일 이란은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어차피 알라의 뜻대로 움직이는 나라가 선거는 뭐하러 이렇게 열심히 할까. 하메네이가 2001년에 한 말이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율이 꽤나 낮은 것을 지적하면서, 한 나라의 유권자 투표율이 40%도 되지 못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로서, 그 나라 국민이 자신들의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뜻이며, 그런 나라에 관심이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2024년 이란의 대통령 선거율은 39.9%에 불과했다. 투표율이 너무 미진해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두 번째로 결선을 치르게 됐다. 7월 5일 금요일에 실시할 예정이다. 게다가 투표자 중 100만 표 이상이 무효 처리됐다. 투표소에 가서 아무 후보도 고르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투표자 상당수는 보이콧을 고집하고 있는 모양이다.
결선에 오른 이는 과거 이란의 핵 협상에 나섰던 사이드 잘릴리(940만)와, 의사 출신의인 개혁주의자 마수드 페제쉬키안(1040만)이다. 칼리바프 국회의장이 얻은 330만 표가 잘릴리에게 갈 가능성이 크다. 칼리바프는 전직 이란 혁명수비대 장군이자 학생 탄압과 부패 혐의로 알려진 경찰청장을 지낸 인물이다. 시아파 성직자 모스타파 푸르모하마디의 20만 표도 잘릴리에게 갈 것이다.
잘릴리는 올해 58세로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살아있는 순교자'다.
이란의 개혁파나 온건파들은 이란이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며 선거를 격려하고 있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이란의 젊은 세대가 투표에 나설 일은 여전히 없어 보인다. 어차피 대통령은 아야톨라 뜻대로 움직이게 될 테니까.
2015년 이란이 유럽 국가들과 핵협상을 체결할 당시 이란 통화 환율은 1달러에 32,000리알이었다. 요즘은 1달러당 617,000리알이다. 은행에 있는 돈이 이미 휴지 조각이 됐다는 뜻이다. 지난 4월 말 이란이 이스라엘 영토를 직접 공격했을 때는 잠시 70만 리알을 넘기도 했다.
아야톨라도 인간이라 죽게 되어 있다. 올해 85세, 아직은 건강해 보이지만 자기 수족으로 일해줄 대통령은 6번째가 마지막이 되기 쉬울 것이다. 그의 알라는 다 계획이 있으시겠지.
참, 알리 카리미는 팔레비 왕조의 살아남은 후계자 레자 팔레비를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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