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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보아, 사울의 전쟁

이즈르엘 평야의 동쪽을 감싸고 누워 있는 길보아 산. 

길보아 산에 가면, 처절한 느낌이 든다. 지리산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데. 활 쏘는 이들을 피해 중상을 입고 헤매는 사울 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간 사울에게 많이 끌린다. 다윗을 선택하신 하나님에게 그가 품었을 섭섭함과 야속함이 너무나 공감이 간다. 다윗이 뭐가 나은데요? 그 패거리들 좀 보세요. 그냥 루저들이라고요. 사람은 쉽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는다. 인간에게 당해도 분이 나서 참을 수가 없는데 하나님에게 배신을 당했다. 나를 세우신 분이, 나를 끌어내리는 걸, 그저 인간일 뿐인 그는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길보아 산에서 가장 도드라진 봉우리 이름이 사울이다. 그래봤자 해발 300미터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 추락을 연습하는 것은 신을 향한 인간의 시위 같기도 하다. 길보아는 끓는 샘이라는 뜻이다. 감정이 부풀어오르고 크게 동요하는 사람들이 결국 패하여 흩어지는 곳. 

  

전체 11개의 봉우리 가운데 최고봉의 이름은 말기수아, 그 외 아비나답, 아브넬 등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으로 지정돼 있다. 나는 아비나답 봉우리에 있어, 말기수아 봉우리까지 얼마나 걸릴까? 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주제에 따라 트래킹 루트를 만들어 놓았는데, 길보아에는 '성경 루트'가 있다. 사울 왕 가문 외에도 사사 기드온 역시 길보아 산과 인연이 깊다. 미디안과의 전투를 앞두고 이스라엘 사람 32,000명 가량이 모였다. 여호와께서는 너무 많다고 하셨다. 그래서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고 하신다. Gilead는 요르단 동쪽이 아니라 길보아의 또 다른 이름으로 여겨진다. 기드온이 줄이고 줄여 300명의 전사들을 선별한 하롯 샘(עין חרוד)이 길보아 산자락에 있다. 미디안의 진영은 그 건너편인 모레 산(גבעת המורה) 앞에 있었다.

 

 

아랍어는 샘 Ein과 Gilead를 합해, Ain Jalud가 된다. 1260년 몽골 부대가 이 길을 따라 왔고 이집트 맘룩의 Baibars 당시 장군이 이들을 맞아 역사적인 전투를 벌인다. 아인 잘룻 전투이다. 바이바스로 이 전투 승리 후 카이로로 돌아가 스스로 칼리프가 된다. 몽골은 더 버티지 않고 돌아간다. 칸 몽케가 죽는 바람에 차기를 노리는 자들의 격돌이 시작됐던 것이다. 내전을 잠재우고 칸에 오른 쿠빌라이는 중원에 올인하고 더는 유럽 원정에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순간의 인연 때문에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는 권위있는 몽골학과를 두고 있다. 나도 몽골에 대해 좀 아는데 (몽골 반점이 있는 민족으로서), 이들의 학문 세계는 완전 별나다. 중앙 아시아 영향으로 모든 용어가 키릴 문자이기 때문이다. 

 

길보아 산의 동쪽으로 좀 더 달리면 마알레 길보아(מעלה גילבוע), 이슈브가 나타난다. 길보아 산의 거센 바람을 에너지로 이용하는 wind turbine 농장이 운영중이다. 이스라엘에서 이곳이 처음이었고 현재는 골란고원 등 여러 곳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웨스트뱅크와의 국경이다. 동쪽으로 더는 갈 수 없다는 뜻이다. 막다른 곳에 키부츠 메랍이 있다. 아버지 때문에 국민 영웅과의 혼사를 놓친 사울의 큰 딸 이름.ㅋㅋ 키부츠인데 문이 굳게 잠겨 있다. 국경지역이기 때문이다. 2001년 인티파다 당시 이곳에서도 희생자가 있었다. 당시 17살의 알리자 말카이다. 제닌에서 국경을 침투해온 이들이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샤밧 저녁 지나가는 차량을 습격한 것이었다. 

 

순찰을 도는 군인들의 차량을 제외하고는 지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다.  

 

이즈르엘 평야로 내려와 올려다본 길보아. 

 

매년 3월이면 피어나는 Gilboa Iris,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다. 사울의 피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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