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선지자는 책의 첫머리부터 울기 시작하지만, 그의 울음이 대략 통곡으로 변하는 지점이 39장부터이다. 40장에서 그는 목소리조차 쉰 것 같지만 42장에서 마지막 사력을 다한 절규를 쏟아놓는다. 하지만 오만한 자들은 그 절규를 거짓으로 매도한다. 이 부분에서 예레미야는 눈물을 닦았을 것 같다. 마지막 소망이 될 수도 있었을 백성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치 않는 모리배들인데, 뭘 더 할 수 있겠나.
기원전 586년 아브 월 (7-8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Yehud 지방의 총독을 임명한다. 유다 왕실에서 서기관으로 일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였다. 왜 그가 선택됐을까? 서기관 집안이므로 문자를 알았을 것이다. 바벨론 제국의 공식 문서인 아카드어와 쐐기문자도 능통했을 것이다. 공문서를 받아볼 능력은 됐으니, 하라는 대로 할 만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그다랴 총독은 바빌론에 끌려가지 않고 이 땅에 남은 백성에게 겨울 양식을 비축하고 땅을 경작하라고 촉구한다. 포도주와 여름 과일이 남아 있으니 벅찬대로 이 모진 시간을 버틸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이곳은 하나님이 그들 조상에게 주신 땅이었으니까.
לגדליה אשר על הבית (belong to Gedaliah who is over the house) 1935년 라기스에서 발견된 그다랴 인장
일곱째 달, 티슈레이 월(9-10월)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해로부터 4-5년이 경과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582 BCE). 물론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라 해도 크게 다를 건 없다. 그다랴 총독의 주위로 남은 백성이 몰려들고 있었다. 유다 왕실의 피가 흐르는 이스마엘 벤 느다냐가 암몬의 꼬드김을 받는다. 유다 민족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언제나 방해하는 원수도 문제지만, 그런 계략에 넘어가는 자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왕실 출신인 건 그저 우연일까. 이스마엘은 그달랴를 죽이고 백성을 포로로 잡고 암몬에게 나아간다.
그다랴가 살해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유다의 군사 지휘관 일부가 남아 있었다. 요하난 벤 가레아가 이 소식을 듣고 이스마엘 벤 느다냐와 싸우려고 기브온 큰 물가로 간다. 오늘날 나비 사무엘 북쪽에 있는 Al Jib이다. 백성은 이스마엘을 따라 암몬으로 가느니 요하난에게 돌아가기로 한다. 웬일인지 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억울하게 피흘린 이를 위해 공의를 바로 세우려는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스마엘은 암몬으로 몸을 피하고, 요하난은 애굽으로 가기 위해 베들레헴 근처 게롯김함에 머문다. גֵרוּת כִּמְהָם? 다윗과 인연 있는 바르실래이 김함이 만든 장소일 것이다. 게룻은 거주한다는 뜻이니 아마도 여행자들이 머무는 khan 여관인 듯하다. 이곳에서 백성은 마지막으로 예레미야에게 나아온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미 끝장난 게 아니던가. 예레미야의 모든 언행이 기이하지만 42장은 특히 어렵다. 왜 아직까지 선지자는 이 백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인가. 마지막 순간에 돌이킬 사람들이라면 애당초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으리라는 걸 몰랐나. 과연 요나단과 백성은 예레미야의 사력을 다한 설득을 거부하고, 모두 애굽으로 간다. 이후 성경은 예레미야의 운명에 대해 알리지 않는다.
스가랴서는(8:9) 그다랴가 일곱째 달에 살했다고 말한다. 보통 이렇게 달만 이야기할 때는 그 첫날일 수 있다. 일곱째 달 첫날은 로쉬 하샤나이고, 둘째 날도 로쉬 하샤나이다. 어떻게 새해 '첫' 날이 이틀이 됐냐면, 혹시라도 음력 계산법이 잘못돼서 로쉬 하샤나를 잘못 셈했다면 다음날을 기념함으로써 만회할 수 있으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절 이틀이 지난 3일째가 그다랴의 기일이 됐고, 마침 성경도 그의 죽음이 알려진 게 이틀 지나서라고 하므로 적합하게 본다.
느헤미야가 조금 문제다. 일곱째 달의 금식이 등장하는데 그날을 24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9:1). 게다가 그다랴의 죽음과는 상관 없는 이방 여자와 결혼 등을 회개하기 위해서였다.
난해한 건 난해한 거다. 유대교는 죽은 이의 기일을 금식으로 기념하고 티슈레이 월 3일, 즉 이틀 간의 로쉬 하샤나 다음날을 금식일로 지킨다. 이런 종교 행사는 이스라엘 국가가 기념일로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금식이 힘든 사람은 자체 휴가를 써야 한다.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묵묵히 일하면서 그다랴 금식일을 지킨다. 가까운 종교인에게 왜 굳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유대인이 같은 유대인을 해친 끔찍한 범죄가 가슴아프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이 1500년 동안이나 마음 아파 되새기고 있는 죽음이 왜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지, 묻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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