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을 보다가 덮은 기억이 난다. 전형적인 1세계 백인 남성의 견해랄까. 재정을 다루지 않는 여행서는 모두 허영일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여행이야말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행에 대단히 진심인데, 내가 이들에게서 배운 것은 실용성이다. 사회적 지위가 이만큼 되니 이 정도 호텔과 차량이 바쳐줘야 한다는 근자감이 없다. 이스라엘 최고 부촌 사비온에 사는 분들과 갈릴리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숙소가 유스 호스텔이었다. 그래도 저녁은 스코티 호텔에서 먹었다.
אגודת אכסניות הנוער בישראל 이스라엘 유스 호스텔 연합이다. 약자로 '아나'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교육부의 지원을 받고 European youth hostel association에 가입돼 있다. 나라가 세워지기도 전인 1937년, 데살로니카 출신의 David Benvenisti가 만들었다. 이스라엘 지리학을 전공하고 '팔레스타인' 최초의 여행 가이드북을 출간한 인물이다. 더 높은 자리로 갈 기회를 마다하고 초등학교 교장으로 헌신했다. 당시 시오니즘은 그랬다. 1964년부터 예루살렘 도로 이름 제정위원회에서 일했기 때문에 67년 이후 세워진 동네의 도로 이름은 다비드 벤베니스티를 거쳤다고 봐야 한다.
아나가 재정이 튼튼해서 모든 호스텔을 지은 건 아니다. 각 지역에 있는 제각각의 호스텔이 연합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 정말 대단한 게, 유스 호스텔이 그 지역에서 최고로 좋은 위치에 있다. 예루살렘 유스 호스텔 두 군데 모두 특급 호텔과 나란히 금싸라기 땅에 위치해 있다. 자리 '선점'의 효과다. 이스라엘은 겨울철이 오프 시즌이라 유스 호스텔이 다 한가한 편이고, 한국 사람들은 주로 이스라엘을 겨울에 찾는다. 하지만 유스 호스텔을 권해서 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뷔페식 아침 식사. 특급 호텔이라고 이 메뉴에서 대단히 달라지지 않는다. 아, 커피 머신은 좀 아쉽다.
킨네렛에 있는 아나는 좀 특별한 면이 있다. 이름이 '카레이 데쉐'인데 초원이란 뜻이다. 킨네렛의 여러 해수욕장 중 후코크와 연결돼 있다. 근처에 샤피르 펌핑 시설(킨네렛 호수 물을 끌어올려 national water carrier로 보내는)과 키르벳 미님이라는 우마야드 시대 궁전 잔해가 있다. 독일 카톨릭이 세운 타브가 교회, 즉 에인 쉐바에서 5분 거리이다.
기독교에 중요한 장소다 보니, 1889년 독일 카톨릭 교회가 여기 농장을 설립해 자리를 잡았다. 1898년 독일 카이저가 방문했을 때 이들도 하이파로 가서 자신들의 황제를 영접했다. 농장은 쉽지 않았다. 말라리아에 손을 든 농장은 농사 대신 관광업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이곳은 독일군 병사들이 머물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인들이 추방되고 이번에는 영국군 병사들이 머문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고 소유권이 독일 카톨릭 교회에 반환됐지만 이스라엘 기관이 수십 년 동안 임대했다. 1953년 농업부가 학교를 열었고, 1955년 이름이 카레이 데쉐, 즉 "초원"이 됐으며, 1961년부터 유스호스텔로 사용됐다.
1990년 독일 카톨릭 교회는 다시 소유권을 확보하고, 원래 부지보다 남쪽에 새 부지를 건설했다. 현재의 아나, 카레이 데쉐 호스텔이다. 또 원래 부지도 개조해서 2001년 Pilgerhaus Tabgha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이곳의 전용 해변이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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