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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타바, 슐롬찌온의 요새

컨텐츠 크리에이팅에서 기존 미디어의 경쟁력은 한계에 달했다는 주장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이스라엘 방송국의 컨텐츠는 여전히 창의적인 면이 있다. 저널리즘이 다양한 직업군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요즘 Kan digital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나타나엘 엘린손의 비슈빌 하시푸르, 이야기를 따라서이다. 엘린손은 성서학자고 모레 데레흐이고 저자이다. 마침 하누카를 맞아 사르타바에 가서 현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요르단 계곡의 요새 사르타바는 알렉산드리온이라고도 한다. 하스모니아 왕조의 알렉산더 야나이가 세웠기 때문이다. 하누카에 사르타바를 찾는 이유는 하스모니아 왕가의 전 역사에서 사르타바는 가장 강력한 상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타나엘 엘린손은 이 사르타바에서 유다 역사상 최고의 여성 지도자, 여왕 슐롬찌온(살로메, 슐로미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르타바는 슐롬찌온이 가장 사랑한 요새였고 그가 남긴 보물이 있는 곳이며 어쩌면 그가 묻힌 곳일 수도 있다. 사르타바는 유다 사마리아 산과 길르앗 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예루살렘의 봉화를 바벨론까지 연결하는 중간 지점이었다. 

 

매달 초하루, 로슈 하샤나와 명절에 되면 예루살렘에서 불을 들어올렸다. 그걸 바벨론까지 전 유대인 공동체에게 전달한 것이다. 어떻게 했을까? 미슈나에 따르면, 큰 백향목(에레즈)을 가져다가 윗부분을 린넨(피슈탄)로 감싼 다음 불을 붙이고 전 방향으로 흔들었다고 한다. 히브리어로 메쑤아, 봉화불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전망산(정확히 말하면 성전산 남쪽 실로지만)에서 사르타바를 거쳐 바벨론까지 이 봉화가 이어지는데, 봉화가 바벨론에 도착한 밤이면 바벨론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이 각각 자신의 집에서 작은 횃불(라피드)을 들어 비추었다고 한다. 이 모든 불빛들은 합해져서 마치 거대한 모닥불(메두라)처럼 보였다. 나타나엘 엘린손은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하누키아의 한 유형이라고 주장한다. 즉 하누키아는 하스모니아 왕조의 봉화를 디아스포라 유대인 각각의 집으로 가져온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사르타바를 거쳐 바벨론까지 하나의 불이 전 세계의 유대인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사르타바는 어디나 관망할 수 있는 높은 곳이다. 단지 해발 높이가 높아서는 아니다. 어디 걸리는 데가 없어서이다.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서 360도 전부 볼 수 있다. 남쪽으로 사해, 북쪽으로 길르앗과 골란고원, 사마리아의 산들이 전부 내다보이고, 심지어 헬몬 산까지 보인다. 현재 사르타바 아래쪽 거주지의 이름이 메쑤아, 즉 봉화이고, 그 옆 마을 이름이 슐롬찌온이다. 

 

유대 역사에서 많은 여성 지도자가 있었다. 사사 시대의 여선지자 드보라, 유다의 여왕 아탈랴, 오토만 제국 시대 도나 그라시아, 1970년대 총리 골다 메이어 등이다. 여왕 슐롬찌온이 왜 대단한지 보려면 하스모니아 왕조를 이해해야 한다.

하누카, 수전절의 시초가 된 사건은 유다 마카비가 다른 네 형제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유대인 독립 국가를 세운 것이다. 큰형 요하난과 엘라자르는 먼저 죽었고 유다에서 요나탄을 거쳐 시므온까지가 제 일 세대 하스모니안이다. 시므온의 아들 요한 히르카누스와 그의 아들 알렉산더 야나이가 제 이 세대 하스모니안이다. 이때 영토가 확장됐고 나라의 내부가 다져졌다. 원래 히르카누스의 큰 아들은 아리스토불루스이고 그 아내가 슐롬찌온이었다. 남편이 일찍 죽고 권력 투쟁에 돌입하자 시동생 알렉산더 야나이를 지지해서 왕으로 만들고 그의 아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알렉산더 야나이가 자신의 아들들인 제 삼 세대에게 권력 이양을 해야 하는 시점에, 특이한 일이 일어난다. 알렉산더 야나이가 자신의 아내 슐롬찌온을 여왕으로 임명한 것이다.

 

알렉산더 야나이는 위대한 왕이자 지도자이고 정복자였다 (이스라엘에 알렉스라는 이름이 많은데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아니라 알렉산더 야나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매우 잔인했고 엄청난 학살을 저질렀으며 많은 현자(랍비)를 학살했다. 그의 왕권은 사두개인과 제사장 중심이었다.

 

*쿰란 문서를 제작한 야하드 공동체가 언급한 '악한 제사장'은 마카비 형제 중 요나단 아니면 시므온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알렉산더 야나이를 충동해 바리새파를 학살한 사두개파 제사장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 

알렉산더 야나이가 바리새파를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믿는 William Swidde의 그림.

 

어쨌든 알렉산더 야나이는 자신이 죽고 나면 이 나라에 평화를 가져올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딱 봐도 그의 두 아들은 그럴 능력이 없었기에 야나이는 자신의 아내 슐롬찌온을 선택한 것이다. 과연 슐롬찌온은 여왕으로 통치한 짧은 기간에 백성 사이에 내적 단합을 이루었고, 다시 현자의 제도를 부활시켰으며(슐롬찌온을 떠받드는 이유 중 하나가 랍비 바리새인을 구원했기 때문이다), 군대를 강력하게 일으켜 세우고 주변 강대국과 동맹을 맺었다. 이로써 슐롬찌온의 시대는 엄청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슐롬찌온은 죽음을 앞두고 두 아들을 간곡히 타이른다. 그들 손에 남겨진 진정한 보물, 즉 국민의 단합, 부강한 경제 상황, 국경을 지키는 강력한 군대를 유지해 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슐롬찌온의 두 아들 히르카누스와 아리스토불루스는 그 반대로 나갔다. 하스모니아 왕조가 세워진 지 73년 되던 해 슐롬찌온이 죽고, 형제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나라는 내부에서부터 붕괴되었고,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가 아무런 간섭 없이 이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상 두 번째 왕조 하스모니아는 이렇게 종말을 맞았다. 

 

레아 골드버그는 "니싸이온-경험"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께 맹세하건데, 지존자시여,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이 완전한 행복의 니싸이온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때로는 행복의 경험이 빈곤의 경험보다 더 어렵다. 우리가 큰 풍요를 얻었을 때 심장 근육 어딘가가 값싼 것에 대해 봉인된다. 하스모니안은 헬라 제국을 물리치고 70년 후 풍요와 번영의 정점에 도달했지만, 그후 슐롬찌온이 두려워한 일이 벌어졌다. 이 왕조의 풍요와 번영이 망가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됐다. 히르카누스와 아리스토불루스 형제는 무엇을 위해 싸운 것인가? 아무것도 아닌 그것 때문에 왕들은 바로 자신의 손으로 유대 국가를 파괴했다. 슐롬찌온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위대한 보물을 지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 역시 건국 73년을 보냈다. 이 이스라엘은 성공해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네탄야후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이스라엘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아마도 나타나엘 엘린손은 그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슐롬찌온에 대한 그의 극찬은 좀 뜻밖이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누카 샤밧에 스가랴 4장을 읽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나라는 인간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만 세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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