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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슐리 란드, 쪼피트 그란트


슐리 란드는 브레슬레브 하시딤 종교인으로, 가수이자 배우이다. 이스라엘에서 종교인이 상업 예술을 한다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가 내놓는 결과물들이 충분히 설득력을 전달했다. 

 

앨범 오른쪽 위에 בס"ד는 Besiyata Dishmaya라는 아람어로, '하늘=신의 도움으로'라는 뜻이다. 말과 글이 반듯해야 하는 종교인들이 글을 쓸 때는 항상 이 표현을 쓰고 헛소리를 끄적이지 않도록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하다못해 야채나 과일 가격표에도 종교인이라면 바싸드를 쓰게 되어 있다.   

처음 슐리 란드의 '아예하'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 가사를 찾아 해석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거창하게 말하면 카프카의 맥을 잇는 유대인의 실존주의 철학 같았다. 아예하는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부르실 때 사용하신 표현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 

 

슐리 란드는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이기도 한데, 예루살렘 나할라옷트를 배경으로 하시딤 기도의 기적을 담은 Ushpizin이라는 영화가 유명하다. 우쉬피진은 숙콧 명절 때 손님 맞이 풍습을 가리키는 말인데, 절박한 재정적 위기에 있었던 부부가 우연히 만난 손님을 선대함으로 도움을 얻게 되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슐리 란드의 3분 가량 롱샷은 꽤나 절절하다. 종교인들은 아내를 제외한 다른 이성과 신체 접촉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슐리 란드의 당시 아내 미할이 영화 속 아내 역할을  맡았다. 예술적 재능 외에 할 줄 아는 게 그다지 없는 슐리 란드를 위해 미할은 매니저 역할을 비롯한 영화사 제작 관련 뒤치닥꺼리를 도맡았다고 한다. 그러다 두 사람은 위기를 맞는다.

 

부부 사이야 당사자들만 아는 것이니 부부가 다투고 갈라선다고 제3자가 뭐라 할 건 아니다. 다만 슐리 란드는 아직 이혼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쪼피트 그란트와 관계를 시작한다. 쪼피트 그란트는 이스라엘 국가대표 축구팀 전 감독 아브람 그란트의 전 아내로, 방송인 출신이다. 첼시를 비롯한 영국 팀 감독으로 떠도는 남편을 따라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가 2014년 결국 이혼했다.

 

세속인이었던 쪼피트 그란트가 하시딤 종교인인 슐리 란드와 관계를 시작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서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소문이 무성해지자 결혼을 서두르는데, 2021년 11월 9일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전 아내 미할은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할을 상대로 쪼피트 그란트는 50만 세켈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유대교가 어처구니 없는 것은 전 남편이 이혼을 반대하면 부부관계가 끝난 아내조차 절대로 재혼할 수 없지만, 반대는 문제가 안 된다는 점이다. 슐리 란드와 쪼피트 그란트의 결혼을 축하하는 것과 별개로, 이 결혼은 유대교 내에서 여성의 차별적 지위를 각인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많은 나라에서 쪼피트 그란트의 행보에 눈썹을 치켜올리는 일도 생겼다. 예를 들면 세속인이었던 쪼피트 그란트가 종교인 복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그란트의 두 성인 자녀는, 슐리 란드에게 어머니를 종교인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종교를 포함한 모든 신념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달린 일이니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세속인들 사이에 널리 비판돼 온 유대교의 모순에 대해 더 이상 그란트의 입장을 듣기는 어려웠다.    

 
문제는 일 년이 지난 후에도 미할의 태도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2023년 1월 6일 쪼피트 그란트는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인스타그램에 미할을 겨냥한 글을 썼다. 미할이 자신에 대해 뒤틀리고 병든 마음으로 거짓말을 꾸며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할이 자기 자녀들과 아버지인 슐리 란드의 좋은 관계를 짓밟고 있다는 것이다. 뭐 그래서 사랑하는 슐리 란드가 고통 속에 있는 걸 더는 못 보겠다는 것이다. 여자들이여, 묵묵히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는 남자를 위해 대신 싸움에 나서는 건 그만 좀 하시라.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   

 

 

모든 가족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는 이 표현만으로도 세기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