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다인종 국가이고 혈통에 대한 관심은 불가항력적이다. 인종주의로 오해 마시라.
첫째 딸 이방카가 유대교로 개종 후 유대인 자렛 쿠쉬너와 결혼함으로써 트럼프 ㅁ전 대통령은 자이데(유대인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가 됐다. 현행 이스라엘 이민법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스라엘 시민이 될 자격이 있다.
둘째 아들 에릭은 결혼하면서 주례를 쿠쉬너가 섰는데 신랑 신부가 캐노피(후파) 비슷한 장식 아래 서는 바람에 아내 라라가 유대인이 아니냐는 루머가 꽤 오래 지속됐다. 에릭과 라라 부부가 세 번에 걸쳐 출산할 때마다 트럼프의 유대인 손주가 태어난다는 오보도 계속됐다(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녀는 자동적으로 유대인이다). 유대인 아니라고 공식 발표를 할 수도 없으니 난감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미디어가 나서서 라라는 유대인이 아니라고 확인했다.
어머니가 다른 트럼프의 둘째 딸 티파니는 오랫동안 사귄 로스 메카닉이 유대인이었다. 이복 언니처럼 개종 절차를 밟는가 했는데 결국 헤어지고 2018년에 만난 레바논 출신 마이클 블로스와 만나 결혼에 이른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 레바논 출신들이 핫하다더니 이런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블루스라는 이름은 기독교계이다. 아랍어로 Paul, 바울을 뜻한다. 레바논은 신약 시대 이후 최초의 기독교 정파 마론파의 고향이다.
결혼식이 공개되면서 볼거리가 심심치 않다. 일단 티파니, 어머니 메이플스, 이방카 모두 레바논이 낳은 패션 디자이너 Elie Saab의 드레스를 입었다. 진짜 드레스 너무 황홀하다.
마이클 블루스의 아버지 Massad Boulos는 대학생 시절에 Sarah Fadoul을 만나 인생이 바뀐 케이스다. 블로스 엔터프라이스는 오토바이 파는 회사지만 파둘은 사이즈가 비교가 되지 않으니까. 아무튼 아버지가 선거에 지고 백악관 비워주는 마지막날, 프로포즈 사진을 자랑하던 티파니는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고, 차기 대선에서 트럼프는 억만장자 사돈의 도움을 입게 됐다. 축하 많이 받으시라.
파둘과 블로스 집안사는 새삼 1930년 레바논을 떠나 아프리카에 정착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현재 주요 아프리카 국가들의 산업은 레바논 억만장자들이 독점하는 현실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1870-1930년 기간 약 330,000명의 이주민이 빌라드 알 샴 (혹은 그레이터 시리아)를 떠났다. 고대 시대 레반트라 불리던 이곳은 현재 국가명으로는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요르단을 포함하는데 원래 그냥 한 나라였다. 제국주의 탓을 많이 하지만 이곳은 프랑스가 아니어도 쪼개질 운명이었다. 이슬람은 마론파를 두고볼 생각이 아니었고, 마론파는 순순히 사라없어질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핍박을 받은 마론파 기독교인들은 조국을 떠나 상당수가 미국으로 건너가 자수성가에 성공했고, 또 기회를 노려 아프리카로 이주했다. 디아스포라 마론파는 지금도 조국 레바논에 상당한 외환을 공급하는 출처이다.
흥미롭게도 레바논 이민사에 대한 냉소적인 견해도 없지 않다. 전통적으로 아랍 국가에서 기독교인은 배신자 이미지가 강하다. 기독교가 서방 국가를 대변하는 종교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레바논 산지의 기독교인들이 미국 이민 비자를 쉽게 따내려고 자신들을 무자비한 오토만에 의한 무방비한 박해의 희생자로 과장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들의 과장된 내러티브가 이슬람과 오토만을 사악하고 폭력적이며 억압적으로 묘사하는 오리엔탈리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오토만은 술탄의 독점 권력을 위해 형제들을 다 죽이는 나라였는데, 폭력적이고 억압적이지 않나? 물론 기독교 역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때가 있었고, 그 암흑을 뚫고 나왔기에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사실 자기 민족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주장을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많다. 평화는 누가 사랑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강제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샬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조차 아들을 포기하셔야 했는데 무슨 헛소리인가.
그렇지만 레바논 이민의 배후에 경제적 동기가 강력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레바논 산지의 실크 산업은 20세기 초까지 GDP의 60%를 차지하는 규모였지만, 결국 전면적으로 붕괴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생계를 위해 아메리카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옮겨갔다. 어느덧 한 세기가 흘러 그들이 지나온 길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결과만이 두드러진다. 전 세계 미디어에 레바논 사람들이 두드러지게 약진하고 있다. 약간 K-문화와 궤적이 비슷하다. 레바논 청년 하나가 트럼프 사위가 됐다고 뭐가 달라질 건 없지만, 그래도 괜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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