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8시 시작된 공습 알람은 9시 30분 다시 한번 울렸고 밤새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아 마마드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살다 보면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건 너무 실감이 안 난다. 잠들 수 없는 이유가 전쟁 때문이라니. 아이들도 적지 않아, 최소한 어른다움을 흉내내긴 했지만 간간히 견딜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이 공습 중에 내가 죽을까봐서는 아니다. 인간의 공감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내가 겪은 것과도 비교도 할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 있는 이들의 소식이 나를 거의 무너뜨렸다.
레임רעים이라는 키부츠 근처에서 초막절 마지막날(10월 6일) 밤 11시부터 메시밧 테바 (자연 파티)라는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네바다 버닝맨 축제의 이스라엘 버전으로 밤샘 사막 축제다. 여기 3천 명이 있었다. 오전 6시 30분 미사일 공습과 함께 하마스 무장세력이 일제히 가자 국경을 넘었다. 레임은 가자 국경에서 고작 6-7 킬로미터 거리이다. 초반의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는 이스라엘 군대의 방어를 늦추기 위한 것이었다. 공습에 놀라 흩어지던 사람들은 곧 RPG와 수류탄 공격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다. 사막을 가로질러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피할 곳을 찾던 이들은 무장단체에 살해되거나 납치되어 가자로 이송됐다. 아비나탄과 노아도 그런 경우였다. 이들이 납치되는 과정을 하마스는 영상으로 공개했다.
크파르 아자에서 민간인을 납치하는 하마스. 오토바이로 납치돼 가자에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노아 아르가마니. 노아의 어머니는 중국 우한 출신으로 현재 암투병 중이다. 노아는 중국 시민권자로, 가족들은 중국의 개입을 희망하고 있다.
브에리 키부츠에도 하마스 무장세력이 침투해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민간인을 한곳에 모아 인질로 삼고 뒤늦게 도착한 이스라엘 군대와 대치했다. 이들 민간인 상당수가 가자로 이송됐다. 여성과 아이들도 포함된 것이 확인됐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가 늦어도 너무 늦게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3-4시간을 숨은 채 버텼다. 이들이 보낸 왓츠앱 메시지가 그 절박한 순간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체 이스라엘 군대는 어디 있었던 걸까.
50년 전,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아랍 국가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날은 욤키푸르로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금식하고 있었다. 군인들의 상당수도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던 것 같다. 이스라엘 군대는 가자 국경에 많은 병력을 배치하지 않은 지 오래다. 최근의 전선은 웨스트뱅크의 제닌과 하와라였다. 하마스는 50년 전 이집트가 그런 것처럼 초막절 며칠 전, 국경으로 사람들을 보내 시위를 벌였다. 교란을 위한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이미 부질없는 일이 됐을지라도, 책임을 가리는 것은 준엄한 과제다.
2009년 3월 10년 만에 총리 직으로 부활한 네탄야후는 그동안의 정책을 뒤집고, PA와 평화 협상이 아닌 하마스와 공존을 택했다. 명목이든 어쨌든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평화하겠다는 PA를 저버리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고 공언하는 하마스를 상대했다. 그게 이전 정부가 약속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무효화할 수 있도록 저들을 분열시키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 절정이 2011년 10월 길라드 샬리트를 구출하기 위한 포로교환이었다. 1027명의 팔레스타인 범죄자들이 석방됐다. 그중 야히야 신와르가 있었다. 하마스의 일인자다. 이스라엘 시민 2명을 살해한 혐의로 22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포로교환으로 풀려나 가자로 돌아온 그가 다짐한 게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석방이다. 이번 이스라엘 민간인 납치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끔찍한 시간을 보낸 이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경악 그 자체다. 아이들을 방에 넣고 문을 잠든 뒤 침투하려는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맨손으로 방문을 지킨 부모들. 텔아비브까지 7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네티브 하아싸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수십 명의 주민들. 한결같이 질문은 하나다. 민간인들이 가자 국경 근처에서 그런 일을 겪는 동안 이스라엘의 안보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은 걸까. 왜 비행기 한 대 뜨지 못한 걸까. 이건 1948년 독립전쟁 때나 일어난 일이 아닌가. 군대가, 참모총장이, 내각 장관들이, 총리가 어디 있었냐는 이스라엘 시민들의 절규는 정치꾼들이 변명으로 쉽게 빠져나가기에 너무 심각하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 내각은, 왜 참모총장이 직접 와서 브리핑을 하지 않냐고 따진다. 거기 앉은 30명 인사 중에 군대도 안 간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브에리는 1948년 독립전쟁을 앞두고 아랍 군대의 상승을 저지할 목적으로 설립된 키부츠다. 전쟁 당시 이들의 희생은 결코 적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서는 안 되는 역사를 가진 곳이다. 아직도 인근 키부츠로 침투한 테러리스트들이 인질을 잡고 저항중이다. 믿기 힘든 현실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 머리 위로 숫자를 헤아리기 힘든 전투기들이 끝없이 지나간다. 모두 남서쪽, 가자로 가고 있을 거다. 가자의 희생도 더 커질 것이다. 이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는 없는 걸까.
셀틱 팬들이 10월 7일 경기 도중 FREE PALESTINE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우리나라 오현규와 양현준이 후반 교체로 나온 킬마녹과의 경기였다. 셀틱에서 열 시즌을 뛴 이스라엘 선수 니르 비톤이 이를 비판했다. 팔레스틴은 이스라엘로부터가 아니라 하마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민간인을 학살하고 납치하는 것으로 자유를 얻을 수도, 그 항거가 승리할 수도 없다. 적어도 역사는 그렇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사망자는 600명, 부상자는 2000명에 달했다. 전사자는 군인 44명, 경찰관 34명이다. 날마다 늘어나는 죽은 자의 수를 헤아리는 이 끔찍한 일이 생각보다 오래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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