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밤 가자 국경 키부츠에서 3일간 숨어 있던 실종자 30명이 무사히 발견됐다. 이스라엘인 16명, 태국인 14명이다. 엄청난 설렘을 주는 소식이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10일 새벽까지 레바논 국경과 가자 국경에서 격돌이 있었고, 38명의 군인이 전사했다. 하티바트 300의 부사령관(중령)이 사망했다. 물과 전기가 끊긴 가자에서 하마스는 한밤중 로켓을 쏘아보내지 못했다. 공습 알람이 울리지 않는데도 깊은 잠은 들지 못했다.
이날 밤 안식을 방해한 건 이스라엘 수상이다. "우리 내부"의 분열은 끝났으니 야당 지도자들은 자신에 대한 정치적 보이콧을 멈추고 전제조건 없이 비상 정부에 동참하란다.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 장기집권하는 총리의 자질은 이런 것이다. 그래도 군인들의 가족은 안도했을 것이다. 저 끔찍히 무능한 각료들이 캐비넷에 둘러앉아 블랙홀같은 입씨름을 벌이다 이 나라 운명을 투표로 결정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알다시피 평화는 부패를 끌어안고 봉인되는 거짓이 아니다. 썩은 잔가지를 도려내는 것이 샬롬이다. 또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어서야 안보 비상 내각이 모인다나 보다. 10월 7일 06:30 이후 이들이 허비한 시간이 믿기지 않는다.
네탄야후 총리는 전쟁 포로와 실종 납치자 문제를 다룰 위원회 수장으로 갈 히르쉬를 임명했다. 정치적 임명이라는 비판이다. 이미 비슷한 케이스에서 책임자로서 실패한 경력이 있고, 무엇보다 IDF와 우호적이지 않다. 중요한 자리에 적임자가 임명되지 않는데 일이 잘 될까. 이스라엘의 관료주의야 유명하지만 이토록 무능한 게 의아할 정도다. 주민번호 철저하고 전산 시스템 완벽한 나라에서 민간인 실종자를 헤아리고 유가족이 시신을 확인하는 작업이 왜 착착 진행되지 않나. 우파 정치가들이 나와 1903년 Kishnev 참사를 담은 비알릭의 시를 낭송한다. 그 입 다물라가 절로 나온다. 문학은 맥락을 이탈하면 타락하는 예술이다.
한편 이스라엘 때문에 미국 정계도 급전개를 맞고 있다. 지난 주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이 해임되면서 국회 활동은 새 의장이 선출될 때까지 동결됐다. 공공예산 등 긴급 현안에 대한 처리가 11월 말까지 연기됐고,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긴급구호 지원 역시 지연되는 것이다. 빠르면 수요일 차기 의장 선출 투표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 어차피 공화당 의원 두 명이 겨루는 경선이다. 루이지애나 주의 Steve Scalise와 오하이오 주 Jim Jordan인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원 사법위원장 짐 조던을 지지한단다.
10:00 가자의 로켓 공격이 주춤한 틈에 집을 나섰다. 토요일 아침 이후 처음이다. 불가피한 일이었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눈에 띄었는데 대부분 노인들이다. 장을 보러 나왔는지 무거운 짐을 들고 걷고 있다. 버스가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사건은 사회 약자층에게 가장 잔인하다. 내가 사는 도시 규모에서 어지간한 버스 운전사들은 예비군으로 자원했을 거다. 의사 간호사 의료진의 상당수도 자원해서 클리닉은 축소 운영중이다. 유통망이 작동을 멈춘 수퍼 진열대는 비어 있는 곳이 많다. 후방을 지키는 것도 전쟁에서 이기는 데 필수다. 이런 말을 내가 하고 있다니 역시나 안 믿긴다.
12:30 에슈콜 지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명사고가 있었다. 이 지역이 농사를 짓는데다 소들이 있어서 이들을 돌보러 밭에 나갔다가 공습을 받은 모양이다.
15:30 쉐펠라와 구쉬 단에 공습 알람이 울렸다. 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리숀 레찌온에 파편이 떨어졌단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한 시간 이상 구쉬 단에 집중된 로켓 공격이 샤론까지 확대됐다. 우리나라 대사관이 있는 헤르쩰리아에도 공습 알람이 울렸다. 외교부가 교민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냐 마냐 한다는데 당분간 별수 없다. 외항사들이 항공편을 끊어서 상당수 이스라엘 시민들도 돌아오지 못하고 해외에 묶여 있다. 이스라엘 항공사들은 계속 운항을 하니, 유럽이나 UAE로 나가서 한국으로 갈 수는 있다.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뿐이다. 우리 주민들은 대개 예루살렘 내륙에 살고 있으니 큰 피해는 없는 게 맞다. 오히려 여기서는 한국 정부가 동요하고 있다고 보도중이다. 하마스처럼 북한 군이 도발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놓치고 IDF가 자국 민간인 보호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전 세계 유일한 휴전 국가가 경각심을 갖는 게 마땅하다. 폴란드도 러시아 공격을 우려 중이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전 세계 평화에 악영향을 준다는 게 증명됐다.
정부 소식통이 인질 협상은 당분간 없다고 선포했다. 납치 사실이 확인된 가족들의 피 마르는 사연이 소개되는 중이다. 공식적으로 미국 시민 11명이 사망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인질 협상을 돕겠다고 제안한 모양인데, 이에 관한 사안은 모두 전쟁 이후라는 게 이스라엘의 입장이다.
17:00 와디 아라, 거의 하데라까지 가자의 로켓이 당도했다. 히브리어에 전쟁은 배가 아니라 머리로 한다는 표현이 있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전략을 앞세운다는 뜻이겠다. 우리 같으면 심장과 머리를 비교할 텐데, 이 민족은 뱃속, 창자에 가장 깊은 인간의 감정이 있다고 믿는다. 성전 멸망을 앞두고 깊은 절망을 느낀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창자를 붙들고 울고불고 한 것이다.
17:30 하부 갈릴리에 포격이 떨어져 헤즈볼라가 개입을 간보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IDF는 레바논 남부에 보복 공격을 했다. 집중 포격을 받은 아슈켈론에서 피해가 보고되었다.
한편 IDF는 가자를 완전히 봉쇄했다고 선언했다. 가자에서 이집트로 빠져나가는 라파 국경까지 파괴됐다. 이 근처에 무기와 장비를 밀수하는 지하 터널이 있었다는 추측이다. IDF는 가자 지구를 떠나 이집트로 가라고 권고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이집트는 당연히 반발하며 가자의 민간인을 이집트로 밀어내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화요일 오전까지 개방된 라파 국경은 허가를 받은 가자인들만 통과할 수 있었고, 결국 파괴돼, 폭격에서 살아남아 기적적으로 국경에 도착한 사람들의 희망을 빼앗았다. 유엔의 구호단체들이 움직여야 할 때다. 볼커 투르크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전쟁 중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이 존중되어야 한다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의 민간인과 민간 시설을 보호하는 게 의무라고 말했다. 또 가자의 전면 봉쇄는 국제법 위반이라고도 했다. 민간인 900명이 살해되고 130명이 납치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겠지만, 볼커 투르크도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다.
가자와 PA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EU가 원조를 중단했다고 말했었는데 사실 그건 아니란다. 작년 한해만 팔레스타인에 9500만 유로를 지원한 프랑스는 "직접적인" 원조를 끊는 건 반대한단다. 그러면서 인질을 처형하겠다는 하마스는 강하게 비난했다. 다들 이 사태 배후가 이란일까 봐 전전긍긍인 가운데, 이란의 아야톨라 카메네이가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가자의 희생자는 약 700명에 육박한다. IDF가 가자 지구의 테러 둥지로 믿고 있는 알 푸르칸 지역이 완전히 폭파됐다. Zikim Beach도 한참이나 불에 탔다.
이스라엘 민간인의 시신이 수습되면서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의 범죄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성범죄 의혹도 제기됐다. 하마스의 범죄 행위에 환호를 보냈던 가자 시민들도 그들의 통치자가 IS가 되었음을 이제는 알 것이다. 키부츠 브에리의 100여 구 시신이 땅에 묻혔다. 6시간이나 인질로 잡혀 구조 요청을 했지만 결국 살해된 이들이다.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부상자들을 돌보던 마겐 다비드 (적십자의 이스라엘 버전) 의료 요원 아미트 만의 장례식에는 수백 명이 찾아왔다. 인구 900만 명인 나라다. 하루 아침에 900명이 살해됐다. 아는 지인의 누구의 누군가가 희생됐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IDF의 희생도 적지 않다. 4일 만에 벌써 100명을 넘었다.
21:00 지하드가 텔아비브 공격을 예고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 때문이다.
21:30 미국 대통령이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며 이란과 헤즈볼라는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바이든의 입을 통해 이스라엘 민간인 희생자 숫자가 1200명으로 확정됐다. 바이든의 연설은 전 세계, 특히 하마스에 대해 입장 정리가 안 된 아랍 국가들도 겨냥할 것이다. 미국을 동맹국으로 갖는다는 게 이런 의미인데, 그깟 도움 필요없다고 깝치던 누구는 듣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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