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새벽부터 전투기들이 저공비행하며 잠을 깨운다.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가 예고한 성명 발표가 오늘 오후 3시인데, 이분의 패턴상 그 전에 뭔일이 터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어제 오후 5시 이후 레바논 국경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 웨스트뱅크 제닌에서도 점점 격화되는 중이다. 가자 지상전 이후 IDF 전사자 숫자는 23명이 되었다.
미국 하원이 참 별꼴이다. 바이든이 비토하겠다는 긴급지원안 법안을 226 대 196으로 승인했다. 12명의 민주당 의원이 당 노선을 이탈해 찬성표를 던졌다. 뭐가 됐든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서둘러야 할 테니까. 애초에 바이든과 민주당이 106 billion 달러를 요구한 걸, 14.5 billion으로 깎은 것도 문제지만, 그 자금 조달을 연방정부가 세금 사기를 쫓기 위해 작년에 승인한 IRS 국세청으로부터 삭감하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방 정부는 세입 손실이 120억 달러 발생할 거란다. 멕시코 국경이든, 중국 대응 방안이든, 우크라이나 전쟁이든 다 상관 없고, 심지어 가자에 인도주의 지원도 관심 없고, 내년 대선에 영향을 줄 이스라엘만 콕 집어서 지원하겠지만, 세금 속이는 부자들과 편법 쓰는 대기업의 이익은 지켜주겠다는 미국 공화당 하원 대단하다. 미국 젊은이들이 화가 많아진 것도 이해는 간다.
전쟁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자세히 대피 방법을 소개하나. 전쟁 오래 간다는 뜻인가. 제일 좋은 건 1990년 걸프전쟁 이후 신축 건물에 의무화된 아파트 쉘터 방 마마드, 그 다음은 야외에 있는 공용 쉘터 미클라트, 그 다음이 공동 아파트의 계단, 마지막이 집에서 1층 가장 안쪽 방이다. 아이언돔이 다 방어하지 못하고 로켓 직격탄을 맞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경우는 모두 마마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대도시, 특히 텔아비브와 구쉬 단에는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마마드가 거의 없다.
08:30 블링켄의 비행기가 이스라엘에 착륙했다. 잭 류 신임 이스라엘 대사와 함께다. 뒷모습 왤케 측은하냐. 상황이 엄혹하긴 하지만 너무 말발이 안 먹힌다. 일단 미국은 일시 중지pauses in fighting를 요구중이다. 전쟁 중에 일시 중지가 휴전 아니야? 아니다. 휴전이란 단어에 경기 일으키는 이스라엘이 절대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인도주의 지원을 위한 잠깐 멈춤을 갖자고 표현하고 있다. 12시간 전부터 하마스의 본부인 가자시티를 포위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블링켄이 도착하기 전에 모든 작전을 마치려고 할 것이다. Shifa병원을 놔둘 수는 없으니. 오늘 오전이 긴박한 이유다. 오후에는 나스랄라가 전쟁에 뛰어들겠다든 뭐든 성명을 발표할 테고, 토요일 암만에서 아랍 국가들 외무부장관 회의가 있다. 이 회의에서 전쟁 이후 가자 문제가 논의될 텐데, 미국은 이미 PA가 가자를 통치하는 쪽을 선택했다. 웨스트뱅크와 가자가 합쳐지게 되면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1947년 이후의 비전이 실현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스라엘의 우파 정부는 가타부타 말이 없는데, 미국 정부는 네탄야후 정부의 교체 가능성을 고려중임을 부인했다.
하마스는 지금 무슨 생각일까. 지도부의 붕괴를 앞두고 이스마일 하니예가 전용기로 이란에 간다나 보다. 헤즈볼라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이스라엘 납치자 가족들이 하마스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있단다. 귀하의 정부가 포로 교환 제안을 거부하니 압력을 가하라고. 애초에 테러를 시작한 이유가 팔레스타인 포로들의 석방인데, 그게 자기 조직의 와해와 가자의 철저한 파괴로 이어질 줄 몰랐을까? 그래도 하마스 거물급은 전부 해외에서 발 뻗고 편히 잔다. 7성급 호텔에서. 자기 가족들도 다 빼내와서. 그러면서 죽는 순간까지 결사항전 하란다. 에라이.
미국의 MQ-9 UAV, 일명 드론 6대가 가자 지구에서 활동 중이다. 무장은 하고 있지 않고, 20시간 떠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신기술 장비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인질 석방과 휴전을 거래하자는 의견을 미국 민주당 의원이 냈다. 안 먹힌다.
이스라엘 인질 숫자는 241명, 그중 어린아이가 32명이다. 영국은 이번 일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표현의 자유 중요하다면서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얼굴을 가렸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은근한 반유대주의로 손색없는 바르샤바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열렸는데, 그날 이런 구호가 나왔다. 바르샤바 의과대학에서 공부중인 노르웨이 학생 Marie Andersen이라고 한다. 이게 왜 문제인지도 모르겠지.
바르샤바 의과대학은 어떤 형태의 증오심 표현이나 폭력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표하기 위해 이 학생을 정학시켰다. 혐오 표현을 게시한 아랍계 학생 4명에 대해서는 퇴학 절차가 진행중이란다. 확실히 바르샤바 대학은 미국 대학과는 다르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압력 자체가 다른 나라니. From the River to the Sea 구호를 외친 이날 시위대가 자기 기분 푼 거 말고, 무슨 실질적인 도움을 가자에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단 한 명의 난민도 받아주지 않을 거면서.
이스라엘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키부츠나 모샤브의 속성상 남자들이 대부분 예비군에 가서 일손이 부족하다. 키부츠들은 테러에 직접 피해를 당하기도 했지만, 수확철을 놓치며 산업으로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사실에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한데, 도움을 하소연하는 주민들더러 "불평쟁이"란다. 왜 저러는지. 여성과 어린이만 남은 농가의 소득을 극대화하도록 곳곳에서 직거래 시장이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진작에 농업을 포기했으니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전쟁중에 농산물 자급이 된다는 건 엄청난 강점이다. 우리집 근처의 키부츠에서 샤밧을 앞두고 열린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뭐든 우르르 몰리는 성향이 있어서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인데다, 목소리 큰 사람만 원하는 걸 얻는 구조라, 수퍼형 인간인 나로서는 너무 힘들다.
장보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렸지만, 샤밧 식사 배달은 얼추 마쳤다. 삭신이 쑤시지만, 마음이 어수선해서 가만 있을 수가 없다. 한 시간 넘게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쓸었다. 하나둘 아이들이 비를 들고 나오더니 결국 골목길 전체를 쓸었다. 오랜만에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나니 어른들도 나와서 한두 마디씩 하신다. 모두 너무 우울하다. 이맘때 집집마다 생일도 많아서 샤밧마다 생일파티를 열었었는데. 그날 이후 다섯 번째 샤밧이다.
15:00 나스랄라가 연설을 시작했다. 전쟁을 더 가열차게 해보겠다는 모양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환호했을까? 하마스는 헤즈볼라가 도와줄 테니 절대 항복 못한단다. 오테프와 네티봇에 공습이다.
15:30 블링켄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아슈켈론과 중부 지역으로 미사일 공습이다. 뭐라 하는지나 들어볼 것이지. 블링켄은 가자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면 전투를 멈춰야 한다. 네탄야후 총리는 인질 석방 없이 휴전은 없다고 말했다. 내용을 떠나 방금 회담하고 나온 두 사람이 전혀 호흡이 안 맞는다. 아무튼 하마스도 쉬파 병원을 잃는 건 지난 15년 통치 전부를 잃는 거니 다급하긴 할 거다. 이스마일 하니예는 정치 협상으로 휴전하자는 모양이다.
나스랄라가 아직도 말하고 있다. 30년 넘게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저런 방에 갇혀, 연설도 예고 후 비디오로 해야 전해지는 삶이 괜찮나. 일단 이번 연설은 저들 용어로 하면 순교자를 기리는 집회다. 10월 7일 이후 사망한 헤즈볼라 대원 56명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헤즈볼라가 전쟁에 참여할지 말지 궁금해하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레바논은 10월 8일부터 전투를 벌였단다. 그랬나? 이번 하마스 공격은 100% 팔레스타인의 결정이며 그들의 전투란다. 앞으로 뭘 어쩌겠다는 내용보다는 이스라엘을 비방하고 가자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연대를 표현하는 정도다. 아니 그래서 요점이 뭐냐? 이스라엘더러 선제공격을 하면 후회할 거란다. 아랍 주변국에게는 하마스 전쟁에 동참하라면서, 하마스의 승리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이 지역 국가의 이익이 될 거란다. 그러니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막고, 이스라엘과 외교 및 경제 협력을 중단하란다. 레바논이야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으니까 그래도 될 것 같겠지. 나스랄라 연설이 끝나자 IDF가 레바논 헤즈볼라 기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17:00 오테프에 공습이다. 시간 맞춰 로켓을 쏘기로 했나.
18:00 스데롯과 오테프에 공습이다.
이스라엘이 생포된 하마스 테러리스트 200여 명에 대한 특별 재판을 위해 사법 절차를 검토중이다. 사형제도가 없는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딱 한번 사형을 집행했는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하마스의 조직 뿌리와 자금줄까지 기소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할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스라엘 법무부장관은 전쟁 중에 사법개혁안을 혼자 추진하고 있다. 절래절래. 법무 전문 기자 가이 펠레그가 이 사실을 보도하며 너무 흥분한다. 가이 펠레그는 심하 로츠만에게 고발도 당한 상태다.
19:50 오테프에 공습이다. 샤밧 식사하는 거 기다려줬나. 오랜만에 정원에서 다같이 모여 식사했다. 동네 꼬마들까지 다 모여서 모처럼 떠들썩했다. 별것도 아닌 말에 다들 웃으려고 노력했다. 5주째 이런 즐거움을 엄두도 내지 못할 오테프 사람들을 생각한다. 명색이 National Security Minister인 인물이 오테프 주민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 있는지 찾아보지도 않는다. 그에게 암이스라엘은 유다 사마리아 정착민뿐인가. 시민의 등급을 정하고 그 피의 경중을 따지는 인간들, 밥맛 떨어진다.
우울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학교 상담사가 연락해서 상담 시간을 잡았다. 1년 넘게 학업 스트레스로 만났던 상담사다. 어제 학교에서 회의 중에 눈물이 터졌었는데, 그게 걱정됐는지 교수님이 상담을 하라고 당부했단다. 자녀 세 명이 모두 전선에 가 있는 교수님이 외노자인 나까지 염려했다는 사실에 다시 눈물이 났다. 기운을 내야 한다. 펀드도 모아야 하고, 갑자기 가장을 잃은 친구 가족도 챙겨야 하고, 수업도 준비해야 하는데, 그냥 멍하다. 욥기를 읽기 시작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이런 일을 몇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어떻게 견디며 살아온 걸까.
21:30 구쉬 단과 쉐펠라에 공습이다. 로켓은 4발이라는데 공습 경보가 근접 도시들에 모두 울리는 바람에 너무 살벌하다. 이런 일을 일평생 겪을 수도 있을 아이들을 보니 더욱 암담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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