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0 샤밧 아침에 산책을 나가려다 가자 상황부터 살폈다. 오테프에 공습 경보다. 산책은 포기해야 했다.
나는 대한민국 군인의 인식표를 드라마로 보고 알게 된 사람이다. 잘생긴 배우 얼굴을 받쳐주는 악세사리쯤으로 이해했다. 이걸 군인 목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지 않나. 인식표가 무슨 역할인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걸 정확히 알고 싶다는 궁금증은 전혀 일지 않았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해 가는 과정이다. 텔아비브 광장에 지지자들이 이걸 가져와 팔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는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부터 물었다. 디스키트 דיסקית. 뭐라고? 영어 disc였다. CD의 디스크보다 이게 원조다. 내가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왔다는 걸 아는 친구들이 더 놀라워했다. 이걸 몰라? 그러하다.
하마스 전쟁이 22일째 접어들던 10월 29일 디스킷이 출시됐다. 납치자 가족을 돕는 하말(상황실, 직역하면 '전투 방'이라는 뜻)의 하이테크 그룹이 인터넷 판매를 위한 사이트도 개시했다. 이 방면으로 도가 튼 사람들이라 순식간에 일이 진행됐다. 한 달 만에 수십만 개가 팔렸고 전액 납치자 가족에게 돌아가는 수익금은 수십만 세콀에 달한다. 키부츠 브에리는 외부 지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이미 선포했지만. 영어로 Bring them Home Now, 지금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써 있다. 히브리어는 הלב שלנו שמוי בעזה 우리 심장은 가자에 포로로 잡혀 있다. 가운데 빗금에서 주춤했다. 이게 왜 있지? 이걸 물어봐도 되나? 군인의 인식표라니까 질문이 쉽지 않다. 목걸이 거는 줄 구멍이 왜 아래도 있어?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건데 빗금이 있는 이유나 같은 이유였다. 모를 수도 있지. 대한민국은 평화로운 나라니까.
아무튼 군인의 인식표는 소리가 나서는 안 된다. 밤에 불빛에 반사되는 일이 없도록 천으로 된 커버로 씌우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디스킷은 그냥 표시나게 달고 다닌다. 그 의미를 하루 이틀 후에 깨달았다. 그 소리가 거슬렸기 때문이다. 소리가 날 때마다, 매 순간 인질로 잡혀 있는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전쟁은 숫자로 표기되는 비극이다. 136명의 인질이 가자에 잡혀 있다. 그중 11명이 외국인이고 8명이 태국인 노동자다. 나머지 3명은 네팔, 탄자니아, 프랑스-멕시코 국적이다. 이들 정부는 자기 시민에 대해 딱히 말이 없다. 125명 이스라엘 인질 중에 114명이 남성이고, 18명이 여성, 2명이 genger 아기 형제다. 이중에서 10명은 75세 이상 고령자다.
12:30 텔아비브로 음식 배달을 가는 길에 오테프에 공습 경보가 울린다. 잠시 후 아슈켈론 지역에 공습 경보다. 조금 더 진행되면 쉐펠라, 그 다음이 구쉬 단인데 괜찮을까? 안 괜찮다 해도 별수 없다. 바깥 차선으로 달려 느릿느릿 도착했다.
14:30 텔아비브에서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오테프 공습 경보가 울린다. 한 시간 남짓 대화에 거의 모든 화제가 전쟁과 납치자와 현실의 어려움이다. 한때 음악과 영화와 철학 이야기로 감탄을 자아냈던 사람들이 그런 세계가 사라진 것마냥 경도돼 있다. 우리 오늘 만나서 한 번도 웃지 않았어요. 마지못해 웃으면서도 눈까지 웃는 사람은 없었다.
15:30 그래도 텔아비브는 열린 가게도 많고, 거기 앉아 떠드는 젊음들도 적지 않다. 아무데나 들어가 잠깐 앉아서 옆 자리 사람들과 얘기하는 재미를 분명 전에는 알았었는데. 점심 때를 놓쳐 입맛은 없지만, 집 근처 한산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밥을 먹기로 했다. 남자들은 모두 예비군에 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도 종업원들은 모두 여성이다. 다음주면 대학이 개학 준비를 할 테고 이들도 학교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레스토랑은 문을 닫을 테니 이 작은 동네는 그나마 아무데도 갈 곳이 없어진다. 음식이 나와 몇 번 삼키기도 전에 우리 동네 공습 경보가 울린다. 시간 많으니 천천히 이동하라는 안내에 따라 쉘터로 이동한다.
샤밧인데도 옆 건물 문을 열어 두기로 합의했나 보다. 이런 건물 층계를 하다르 마드레곳, 계단 방이라고 부른다. 대도시에서 방공호 대용이다.
17:30 원래 샤밧에는 집안일을 안 하는 편인데, 마음이 심란해 자꾸 움직이고 있다. 한참 부엌을 정리하고 나와 욕실을 청소하다 말고 문득, 이래도 되나 생각이 든다. 그렇지, 공습 상황을 봐야지. 청소 마치고 샤워 할 수 있겠나. 옆에 폰을 가져와 방송을 켜놓는다. 헤즈볼라가 공습을 했다. Mevuot HaGilboa Industrial Zone, Geva, Hever Settlements, Kfar Yechezkel,
Yael Settlements, Amen Settlements, Yizre'el, Gidona, HaYogev, Afula, Sulam, Na'ura, Nin, Merhavia Kibbutz, Merhavia Moshav, Ed-Dahi, Dovrat, Ahuzat Barak, Industrial area Alon Hatovor, Tel Adashim, Sarid, Nazareth, Nazareth Illit, Mizra,
Migdal HaEmek, Kfar Gidon, Yafia, Genigar, Balfuria, Iksal. 하부 갈릴리 거의 전부에 공습 경보다. 미쳤네,가 절로 나온다. 상당수가 아랍인 지역이다.
Bring Them Home Now! 캠페인은 10월 7일 당시 일어난 일을 가족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영상으로 옮기고 있다. 이스라엘 영화업계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했고, 책임을 맡은 이는 "Waltz with Bashir"로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올랐던 아리 폴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욤키푸르 전쟁을 다룬 소설 One Thousand Yards There를 영화하는 작업중이었단다. 3월부터 시작된 작업은 현재 중단됐고, 욤키푸르 전쟁으로부터 50년 만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을 영상화하고 있다.
내일 새벽에 줌 회의가 있어 오늘 저녁 텔아비브 집회에 가지 못했다. 지난주에 5만 명 정도가 모였는데 오늘은 그 배는 되는 것 같다. 136명 인질들을 지금 집으로 데려오라고 촉구하고 있다. 50일 이상 인질 생활을 경험한 석방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키부츠 니르 오즈의 납치자 4명과 브에리의 납치자 1명이 인질 생활 가운데 사망했다. 사망의 구체적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마스는 비바스 엄마와 두 아들이 이스라엘 폭격으로 사망했고, 아빠 야르덴이 이들 시신을 이스라엘로 보내달라고 절규하는 영상을 공개했었다. 하지만 죽었다는 증거 자체는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를 선동으로 여기고 여전히 이들의 생환을 위해 싸우기로 다짐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IDF 전사자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10월 7일 전사한 군인에 대한 보도가 허락됐다. 41세 중령 아사프 하마미, 남부 연대의 사령관이었다. 하마스에게 잡혀 인질이 되었다가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연대 사령관은 이제까지 적에게 포로로 잡힌 IDF 군인 중 최고위급이다. 연대 관련 기밀을 알아내기 위해 엄청난 고문을 했을 것이다. 시신은 아직 하마스 손에 있다. 랍비가 정황을 참조해 사망을 선포했기에 유대법상으로는 그를 매장할 수 있다. 이른바 빈 무덤이다.
22:00 쉐펠라와 구쉬 단과 텔아비브에 공습 경보다. 텔아비브 집회에 왔다가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 모두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감싸쥐고 있겠지. 당연하지만 이렇게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이상하게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뜻밖의 친목 도모? 하마스도 답답한 건지 로켓을 마구잡이로 쏘아보낸다. 이스라엘 인구의 약 20퍼센트가 쉘터로 대피했다.
Mikveh Israel, Holon, Givatayim, Azor, Tel Aviv - City Center, Tel Aviv - East, Tel Aviv - South and Jaffa, Shoham, Kfar Truman, Tirat Yehuda, Bareket, Beit Arif, Giv'at Ko'ah, Industrial area Hevel Modi'in, Ramat Gan - West, Bnei Brak, Ganot, Hemed, Ganei Tikva, Ramat Gan - East, Kiryat Ono, Savyon, Yehud-Monosson, Or Yehuda, Modi'in, Modi'in - Ligad Center, Mevo Modi'im, Hashmonaim, Kfar HaOranim, Shilat, Matityahu, Modi'in Illit, Lapid, Kfar Rut, Yagel, Zeitan, Achiezer, Zrifin Industrial Zone, Ramla, Nir Zvi, Lod, Be'er Yacov, Nesher Industrial Zone (Ramla), Rishon LeZion - West, Bat Yam, Tirosh, Geffen, Hadid, Ben Shemen Youth Village, Ginaton, Beit Nechemia, Ben Shemen, Tzafria, Kfar Chabad, Beit Dagan, Rishon LeZion - East, Mishmar HaShiva, Modi'in - Ishpro Center, Ramot Meir, Kiryat Ekron, Ptachia, Pdaya, Azaria, Sitria, Na'an, Mishmar Ayalon, Mazkeret Batya, Karmei Yossef, Kfar Shmuel, Kfar Bin Nun, Kfar Bilu, Yatzitz, Yad Rambam, Ganei Yochanan, Ganei Hadar, Gezer, Beit Uziel, Beit Hashmonai, Rinatya, Ness Ziona, Nechalim, Nofech, Matzliach, Mazor, Magshimim, Yashresh, Bnei Atarot, Be'erot Itzhak, Ahisemech, Rehovot, Netzer Sireni, Kfar Daniel, Gimzo, Gibton. 진지하게 지리 공부에 도움이 된다.
하마스가 피해가 적지 않을 전투 재개를 불사한 이유는 15명 여성 인질들을 풀어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청소년과 여성 인질 석방에 동의한 이유는 하마스 관점에서는 이들의 몸값이 가장 싸기 때문이다. 젊은 남성, 늙은 남성, 그 다음이 여성, 어린이 순이다. 그런데 한사코 15명 여성은 내놓지 않으면서 남성 인질을 대신 내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그동안 풀려난 인질들이 IDF에 정보를 주었기 때문이란다. 남성 인질은 정보를 안 주겠나? 오히려 키부츠 출신들은 나이가 많다면 수많은 전쟁에서 단련됐기 때문에 "한 시간쯤 걸어서 터널에 도착했다" 같은 두루뭉실한 증언 대신 어느 지점에서부터 북서쪽 몇 도 방향이었다고까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마스가 뭘 감추려는 걸까. 15명 여성들이 목격하고 경험한 사실이 세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일 텐데. 걱정된다. 대부분 음악 축제에서 포로로 잡힌 젊은 여성들이다. 전 세계 헤드라인으로 알려진 경우들도 많다.
예루살렘 테러에서 세 명의 희생자 외에 군인들이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Yuval Doron Castleman이 살해됐다. 건너편에서 총기를 들고 오는 그를 군인들이 테러리스트로 오인해 살해했다고 알려졌다. 카슬만이 땅에 누워서 손을 공중에 들고 있는데 군인들이 다시 총을 쏘는 영상이 공개됐다. 카슬만이 "쏘지 말라"고 외치는 음성도 들린다. 과거 토하르 네쉐크를 어기고 이미 진압된 테러리스트의 생명을 끊은 군인을 변호한 인물이 현재 경찰장관 벤그비르다.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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