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이스라엘의 장례

원래 죽음에 대해 자주,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죽음의 의미 같은 건 아니다. 죽음에 무슨 의미를 따지나. 어차피 끝나는 건데. 내가 생각하는 건 주로 죽음을 처리하는 남은 자들의 과제이다. 남의 나라에 살다 보니 어디서 죽을지부터, 생각할 게 꽤 많다. 이 나라는 살기도 그닥이지만, 죽기에는 더 좋지 않은 여건이다. 

 

이제는 상식처럼 됐지만, 임종을 앞둔 이는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병원 이외의 장소에서 사망하면 절차가 복잡하다. 이 나라도 마찬가지다. 의사의 사망 진단서가 장례 절차의 필수 조건이다. 병원에서 서류를 받아서, 먼저 자기 지역의 חברות קדישא 장례 회사(?), burial society에 연락한다. 이 회사는 직접 찾아가면 아무도 만날 수 없고, 관련 인사와 무조건 전화 통화를 해야 한다. 전화로 알려주는 대로 절차를 마치면(서류 이전), 이 회사가 병원과 협조해 시신을 공동묘지로 운반해서 염하고 수의(린넨)를 입힌다.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관을 쓰지 않는다. 헤브라 카디샤의 가장 큰 임무는 시신의 도난(!)을 막는 것이다. 할일이 많은 유가족을 대신해 시신을 맡아주는 것이다. 또 가족이 없는 이들의 장례를 관장하기도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많은 관습은 유대교에 빚진 게 많다.  

 

자, 그런데 모든 이스라엘 시민은 자기 종교에 따라 장례를 치르게 되어 있다. 헤브라 카디샤는 유대인만 관장한다. 무슬림이나 기독교인은 자기 종교 관련자에게 연락해야 한다. 그럼, 나같은 외국인은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할까? 이래서 내가 생각이 많아진 거다. 

 

이스라엘 시민은 국가가 제공하는 공동묘지-주거지에서 가까운 곳에 무료로 매장될 수 있다. 국가는 이들 매장지를 관리하고 장례를 주관하라고 헤브라 카디샤에 엄청난 예산을 배당한다. 나는 일년에 5번에 걸쳐 비투아흐 레우미, 사회보장기금을 납부하는 훌륭한 시민이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매장지를 무료로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의 유대인 묘지에는 묻힐 수 없고,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헤브라 카디샤가 내 장례를 주관해 주지도 않는다. 기독교인 묘지가 있는 도시로 가야 한다. 예루살렘 시온산에 기독교인 묘지가 있긴 한데, 대개 정교회나 카톨릭을 위한 곳이고, 내가 여기 묻히려면 플린더스 페트리나 오스카 쉰들러 정도의 업적이 있어야 한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곳이 German Colony에 있는 독일 기독교인들의 묘지다. 국가 관할 지역이 아니니 돈을 내야 한다.

 

샤밧이나 명절이 아니라면, 임종 당일, 장례식을 엄수한다. 멀리에서 와야 하는 가족을 기다리거나 하는 이유로 장례를 미루면 병원에 시신을 보관해야 한다. 돈이 든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지라 보통 장례식은 오후에 열리는데, 헤브라 카디샤가 지정한 시간에 하는 법이다. 유대인과 무슬림은 반드시 매장해야 하지만, 기독교인이나 기타 종교인은 화장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이 나라에는 화장터가 딱 한 군데 있다. 2004년 설립된 Aley Shalechet Ltd., 주식회사 단풍잎이다. 이 회사가 생기기 전까지는 시신을 키프러스로 보내 화장하고, 유골함을 들여와야 했다. crematorium 비용은 꽤나 든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장례는 수익성이 보장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장례를 주관하는 헤브라 카디샤는 옥서도스 유대교 독점이다. 국가 행정부서로 종교부가 있는데, 우파 정권에서는 초정통파 의원이 장관을 맡는다. 최근 이스라엘 종교부장관 에레즈 말룰이 매장지 장사가 꽤 이문이 남는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동안 통제해 왔던 매장지 가격을 자유 경쟁에 맡기는 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아무리 국가가 장지를 무료로 제공해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미리 무덤을 맡아놓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인구 폭발 덕분에 매장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떤 유대인은 종교성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루살렘 감람산에 묻히고 싶어한다.  평범한 도시 공동묘지에서도 이왕이면 좋은 자리에 묻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모든 공동묘지는 대략 15%의 부지를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미리 판매하기 시작했다. 살아 생전에 예약하면 17,000셰켈, 사망자의 경우라면 최대 80,000셰켈을 내야 한다. 부부 중 한 명이 먼저 사망하면, 그 옆자리에 배우자를 위한 무덤을 맡아놓고 싶어 한다. 이 경우 5,000셰켈을 내야 한다. 국가는 이들 가격이 더 오르지 않도록 감독해 왔다.   

 

이들 가격에 상한선이 없어지고 경쟁에 따라 무한대로 상승하면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 헤브라 카디샤 수입이다. 종교부 장관은 이렇게 늘어난 수입으로 묘지 개발과 유지 관리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제의 잔재일지언정, 우리나라가 공자님 가라사대에서 벗어나 화장을 선호하게 된 것은 참 잘된 일이 아닌가.   

시온 산 기독교 묘지에 있는 오스카 쉰들러 무덤. 유대인 1200명을 살렸고 카톨릭 신자라 여기 묻힌 것이다.

'Peop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날, 나할 오즈 기지의 여군들  (0) 2024.11.08
트럼프 당선 연설  (4) 2024.11.07
사마르의 버킨백  (2) 2024.10.22
사피르 코헨, 55일의 인질 기록  (2) 2024.10.05
유발 하라리 <넥서스>  (1) 20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