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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Mt. of Olives) 교회들

예루살렘 지형과 관련된 유명한 표현은 시편 125편에 있다. יְרוּשָׁלִַם--הָרִים, סָבִיב לָהּ 예루살렘을 산들이 두름과 같이!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두르신 것처럼 견고하고 아름답다는 뜻이다. 고대 예루살렘 성이었던 다윗성에서 바라보면 남쪽에 에쩰산, 서쪽에 시온산, 북쪽에 전망산, 동쪽에 감람산이 자리한다. 산이 기대보다 낮기는 하지만 히브리어로 명백히 '하르' 산이라 부르는 것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중 동쪽 감람산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큰 의미가 있다.  

 

감람산이 기독교에서 갖는 신학적 의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장소라는 점이다. 복음서 중에 마태, 마가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승천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기독교 전통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따라 감람산을 따른다. 전통의 영역에 대해 시니컬한 개신교인의 심정은 잘 안다. 그런데 교회 역사라는 게 현 시점에 구미에 안 맞는다고 대폭 무시할 것은 아니다. 개혁교회가 나타나기 전 하나님이 다양한 기독교 정파들을 통해 일하셨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기원후 4세기 콘스탄티노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왕비는 성지를 방문해 예수 그리스도 생애에서 중요한 장소마다 교회를 세웠다.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탄생교회, 예수가 돌아가신 예루살렘 골고다 성묘교회, 예수가 승천하신 감람산이다. 감람산 교회 이름은 엘레오나, 올리브나무를 뜻하는 헬라어 엘라이아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탄생교회나 성묘교회와 달리 엘레오나는 교회로서 기능이 유지되지 못했는데, 그래도 교회의 존재를 확신하는 이유는 4세기 순례자 에게리아가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또 유세비우스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감람산에 예수의 승천과 관련된 교회가 있었다고 언급한다. 

사실 비잔틴 시대 엘레오나 교회는 감람산을 승천 사건보다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신 장소라는 점에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교회 이름도 '제자들 교회'로 알려지기도 했다. 현 위치가 아닌 현재 주기도문 교회가 있는 자리에 있는 반동굴이 비잔틴 시대 유적이다.

비잔틴 교회는 614년 이란의 사사니아 왕조가 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 파괴된다. 현재 장소에 예수의 승천을 기념한 교회를 제대로 세운 이들은 11세기 십자군이다. 탄생교회와 성묘교회를 레노베이션하면서 감람교회를 그대로 둘 수 없었기 대문이다. 승천교회는 예수가 승천할 때의 발자국이 찍힌 바위를 한가운데 두고 전통적인 교회 건축 양식 팔각형으로 두른다. 7세기 말 우마야드 왕조가 세운 엘악사의 황금돔과 똑같은 구조다.

 

1187년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을 몰아낸 살라딘은 십자군의 승천교회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황금돔과 세트니까). 모스크로 개조한다. 이 대목이 재미있는데 모스크의 이름이 '승천' 모스크이다. 이슬람은 예수의 신성을 무시하고 무함마드 선지자처럼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예수의 이적들은 대개 인정하지만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에 대해서는 당연히 부정한다. 특히 십자가 처형에 대해서는 마지막 순간에 알라께서 예수와 얼굴이 같은 사람으로 바꿔치기를 하셨다거나,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와 마리아와 가정을 이루고 잘 살다 자연사했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그럼 승천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정파에 따라 승천해서 언젠가 다시 심판하러 내려오실 거라고 믿기도 한다. 어쨌든 살라딘의 모스크는 이 자리가 예수의 승천 자리임을 인정하며 '승천' 모스크로 계승한다.   

 

현재 유적지에는 비잔틴 시대 잔해가 표시돼 있고 시리아, 아르메니아, 콥틱 교회 등이 제단을 마련하고 예배를 드린다. 카톨릭에게는 그 제단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승천 주간에 카톨릭 수사들은 특별 허가를 받고 예식을 치른다. 승천 모스크는 비무슬림이 들어갈 수 없지만 모스크 아래 있는 매장지를 방문할 수는 있다. 대개 이슬람 모스크는 위대한 인물들의 매장지 마캄을 토대로 한다. 승천 모스크의 기초인 마캄은 희한하게도 삼 종교의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유대교는 여선지자 훌다의 묘라고 본다. 2차 성전 시대 훌다의 묘는 성전 남쪽 문 근처에 있었는데? 그러하다.

기독교는 5세기 성녀 펠라기아의 묘라고 본다. 안디옥의 황진이 같은 인물인데 회개하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금욕생활을 했다. 여성성을 전부 지우고 살았기 때문에 매장할 때 비로소 여성이라는 게 드러났다는 전설이 있다. 성지에 펠라기아의 아이콘과 스토리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슬람은 9세기 이라크 출신의 여성 시인이자 수피 예언자 라비아 알 아다위야의 매장지라고 믿는다. 승천 모스크는 이슬람 정파 중에 수피 계열이다. 흰 드레스 입고 춤추며 알라의 계시를 고대하는 그분들 맞다. 

 

한편 십자군은 감람산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기념하기 위한 교회도 재건한다. 1152년 웅장한 규모의 십자군 교회가 세워지는데 덴마크의 주교가 제공한 기금 덕분이었다. 그는 죽어서 이곳에 묻혔다. 당시 유럽의 기독교인이 성지에 헌금하는 주된 목적이 매장지 확보였다. 예수가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이 일어날 텐데 감람산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살라딘은 이 교회는 가만두지 않았다. 교회는 심하게 손상되고 버려진다. 19세기 프랑스 라투르 도베른의 공주 Aurelia Bossi가 교회 부지를 매입해 재건하고 카르멜 수녀회에 내어준다. 수녀회는 예수의 가르침, 그중에서도 '주의 기도'를 기념하는 교회를 세우기로 한다. 현재 '주기도문 교회' 건물은 1920년대 프랑스의 건축가 Marcel Favier가 세운 것이다.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오렐리아 보시 공주의 무덤은 예배당 바로 옆에 있다. 피렌체에서 사망했지만 유언에 따라 1957년 유해가 이장됐다.

  

감람산은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매장지다. 성전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도 여기 빠지지 않는데, Seven Arches의 전통이다. 심판의 날 감람산에서 엘악사의 사슬 돔(엘 악사의 정확한 중앙)까지 일곱 개의 아치로 된 다리가 놓인다. 의인은 무사히 건너고 악인은 발을 헛디뎌 여호사밧 골짜기로 떨어지게 된단다. 이걸 기념해서 감람산에서 세븐 아치스 '호텔'이 서 있다. 요르단 통치 시절 세워졌다. 소유권 이전 과정이 흥미로운 호텔이다.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 일주일 감람산에서 성전까지 날마다 왕래하셨다(숙소였던 감람산 너머 베다니는 5성급과는 거리가 멀다. 그때도 가난한 동네였으니). 동쪽에서 서쪽으로 행진했으니 성에 가까이 다가가면 예루살렘과 성전이 한눈에 보였을 것이다. 그때 이곳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무저질 것을 예언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눅 19:41). 또 그동안 수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돌이키지 못한 예루살렘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에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 23:37-38).

이를 기념하는 교회가 Dominus Flevit(Lord wept) 교회이다. 1964년 2차 바티칸 공의회로 교회 일치 운동을 선포한 교황 바오로 6세는 성지를 방문해 1054년 갈라선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를 만난다. 당시 감람산은 요르단 영토였고 요르단 왕 후세인은 이 만남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는 데 그의 나라와 지위에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다.  

 

 

 

감람산을 내려오면 막달라 마리아를 기념하는 러시아 정교회가 있다. 보통 문이 닫혀 있지만 기독교 여성을 주제로 한 프로세션이라면 꼭 들러볼 가치가 있다. 교회 건너편에 예수님이 묶여 채찍질을 당했다고 믿는 기둥이 있다.

 

 

 

막달라 마리아 교회

예루살렘 감람산에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기독교에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중 러시아 정교회도 있는데 이름이 Church of Mary Magdalene이다. 뭔가 여성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성지의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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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겟세마네다. Gethsemane는 גד와 שמן이 결합된 아람어다. 가드는 기름을 짜는 프레스 틀을 말하고, 쉐멘은 올리브 기름이다. 겟세마네는 올리브 기름 짜는 곳이다. 히브리어는 베이트 가드בית גד이다. 감람산이라는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다. 겟세마네는 예수님이 체포되신 사건을 기념해 agony, 슬픔 교회가 세워져 있다. 

 

4세기 비잔틴 교회 잔해 위에 여러 차례 재건되다가 현재 교회 건물은 1924년 봉헌됐다. 안토니오 바를루치의 설계다. 여러 나라의 헌금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열방 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단 앞에 예수님이 그 위에 기대 기도하셨던 바위가 놓여 있는데 역사적 실체와 상관없이 가슴이 뜨거워지는 공간이다. 비잔틴 교회 유적에서 2차 성전 시대 미크베도 나왔다. 교회 건물 바깥의 돌은 가까이에서 보면 연한 핑크색인데 베들레헴 돌이다. 예루살렘의 라임스톤이 아니다. 교회 내부는 천장은 파란색으로 창문은 보라색으로 염색한 알라바스터 패널을 사용해 장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교회 정문의 청동문은 네 복음서 기자들을 묘사한다. 

 

유대인 투어 가이드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곳이 감람산이다. 순례자들의 격동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직통 라인에 있는 유대인 친구가 하루만 제발 와 달라는 날이 대개 감람산 일정이다. 자기 문제가 뭐 같냐고 묻기에 하루 모니터링을 해준 적이 있다. 겟세마네 올리브 정원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 있는 세 나무가 에레츠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올리브 나무이다.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각각 1092년, 1166년, 1198년에 심어졌다는 걸 확인했다. 동일한 부모 식물에서 나온 형제 나무들이다.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물었다. 이런 거 재미있지 않냐고 본인이 흐뭇하다. 2천년 전 예수의 슬픔에 동참하려는 사람들한테 겟세마네 정원 올리브 나무는 아무리 오래돼도 천 년 밖에 안됐다는 말이 그렇게 하고 싶나. 또 순례객들을 뽑아 상황극을 재현하겠단다. 본인이 로마 군인 역할을 맡아 예수를 체포하면서 개그 실력을 뽐내고 싶다나. 그냥 나를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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