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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니짜빔(신 29:9-30:20), 바옐레흐 (신 31) 다음주 샤밧이 로쉬 하샤나이기 때문에, 거기 맞춰 파라샤 두 개를 함께 읽는다. 신명기 뒷부분은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아주 산만한데, 이맘때 읽어야 할 기도문까지 겹쳐서 한꺼번에 퍼붓는 느낌이다. 끝이 다가오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고. 1알리야 29:9–28 키 타보 마지막 부분이 새로운 언약식이었다. 니짜빔נצבים은 그 언약식에 서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지파의 수령과 장로와 지도자(=경찰) 모든 남자와 유아와 여자 객(=개종자들), 나무 패는 자부터 물 긷는 자들까지 신명기는 개종자들גרים에게 관심이 많다.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한 가나안 땅에서 과거의 대적이 하나님 백성의 편으로 돌아서는 것은 불가피하다. 아마도 이 객들의 직업이 나무 패는 자부터 물 긷는 자까지였을 것이.. 더보기
파라샤 키 타보 (신 26:1-29:8) 파라샤 키 타보를 읽는다. 토라에서 재미있음과 없음을 가르는 기준은 뭘까. 앞의 파라샤들이 대박 지루한 데 비해 이번 파라샤는 파닥파닥의 연속이다. 당연히 문체의 차이다. 내용적으로 "그 땅에 들어가면" 지켜야 할 내용들이다. 기약 없는 광야 생활의 가상적 규례가 아니라, 본격적인 정착 생활에서 현실화된 법규들이다. 유대인들은 세속인도 바르 미츠바 때 회당에서 낭독한 파라샤를 소중히 여기는데, 이상할 만치 파라샤 키 타보라는 사람이 많다. 일년 열두 달 출생연월에 따른 바르미츠바 파라샤가 유독 9월 첫주에 몰린 건가? 13살 아이가 회중 앞에서 혼자 토라를 낭독하는 일은 자칫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긴장된 순간이다.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보아온 어른들이 갸륵한 눈길로 보고 있는 자리에서 실수라도 할까봐.. 더보기
파라샤 키 테쩨 (신 21:10-25:19) 파라샤 키 테쩨를 읽는다. 키 테쩨는 "네가 나갈 때"를 뜻하는데, 이 문맥에서는 전쟁에 나갈 때를 말한다. 1알리야 21:10-21 앞선 내용이 무고한 피를 흘렸다면 대신 암송아지 목을 꺾어서라도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건데, 작정하고 원수의 피를 흘리는 전쟁에서 주의사항은 포로 문제다. 특히 예쁜 여자 포로다. 얼마나 예쁜지 결혼까지 하고 싶어졌다. 그러면 여자 포로를 집으로 데려가서 머리를 밀고, 손톱을 다듬고, 포로의 옷을 벗기고, 자기 부모를 한 달 간 애도하게 한 다음 아내로 맞이한다 (히브리어 이샤는 아내를 뜻하지만 첩이기도 하다. 하갈이 아브라함의 이샤였다). 그러다 마음이 식으면, 이제 와서 노예로 팔지 말고 즉시 놓아주어야 한다. 마지막 문장이 특이하다. לֹא-תִתְעַמֵּר בָּ.. 더보기
파라샤 쇼프팀 (신 16:18-21:9) 파라샤 쇼프팀을 읽는다. 쇼프팀שֹׁפְטִים은 재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체데크, 정의가 이 파라샤의 아젠다다. 하나님은 지파마다 쇼프팀을 두고, צֶדֶק צֶדֶק, תִּרְדֹּף 정의를 쫓으라고 하신다. 정의는 기다리거나 맞이하는 게 아니라 찾아 헤매야 한다. 저절로 실현되는 정의는 없다. 정의를 힘써 찾지 않으면 구경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파라샤에서는 그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방도로서 재판관, 왕, 레위인, 선지자 등에게 주어진 미츠바와, 도피성, 증인, 전쟁, 미해결 살인 등 제도의 규범들이 제시된다. 1알리야 16:18-17:13 재판관이 필요한 이유는 뇌물 없는 공평하고 공정한 통치를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역할의 재판관이 부패했다고 상상하면 참 답.. 더보기
파라샤 르에 (신 11:26-16:17) 파라샤 르에를 읽는다. 르에ראה는 보라는 명령어지만, 주목을 끌기 위한 관용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말 성경은 옮기지 않았다. 자, 봐봐의 뉘앙스다. 모세는 이스라엘 앞에 두 가지가 놓여 있다고 말한다. 복과 저주다. 신명기 12장부터 26장은 학문적으로 신명기 법전이라고 부르는데, 다양한 법체계를 다루는 것 같지만 결국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명령이다. 지키면 복이고, 어기면 저주다. 때로 인생의 의미가 난해할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의 문제고, 대개 양자택일이 결론이다. 쉽게 보자면 한없이 쉬운 게 인생이다. 그럴 리가 없어, 열심히 에둘러 돌아와 보니 사다리타기처럼 짧은 길을 멀리 헤매다 왔을 뿐이다. 회상을 통과한 모세의 당부는 간결하다. 1알리야 11:26-12:10 이스라엘 백성 앞에 복과 .. 더보기
파라샤 에케브 (신 7:12-11:25) 휴가인데 파라샤를 읽고 있다. 다들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그러게. 토라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거나 가까이 하고 싶어 좀이 쑤시는 건 아니다. 파라샤 읽기 8년차인데 파라샤 에케브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매년 휴가 때 맞이하는 파라샤니 건너뛴 해가 많았던 것이다. 내용 자체도 고만고만해서 몇 번을 읽어도 와닿는 게 없다. 신명기 말씀인데, 예수님이 제일 많이 해설하신 책인데 왜 이러지? 에케브는 우리말로 "-니까"에 해당하는 이유 접속사다. 너희가 이 모든 법들을 듣고 지켰으니까, 그 결과 여호와가 하실 일들, 즉 복의 내용이다. 상당히 포괄적인 일반 은총이다. 그러니 복인데도 무덤덤하다. 마침 에케브는 명사로 발꿈치의 뜻도 있다. 형의 발꿈치 잡고 태어난 인물이 야아코브(야곱)이다... 더보기
파라샤 바에트하난 (신 3:23-7:11) 신명기 말씀에서 자기 개발 코드를 찾아낸다면 아마도 '기억의 파워'일 것이다. 잊지 않는 것의 유익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들의 긴 역사를 다시 또 다시 반복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해석을 덧붙인다. 유대인이 아닌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왜"를 떠올린다. 왜 이 백성이어야 했을까. 놀라운 일과 두려운 능력으로 다른 민족에게서 탈출해 나온 전대미문의 민족, 불 가운데서 말하는 신의 음성을 듣고 살아남은 민족, 게다가 긍휼이 많으셔서 그들을 버리지도 멸망치도 잊지도 않으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민족이 왜 하필 이들이었을까. 왜라는 질문은 사명과 연관돼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사명은 무엇일까. 그들이 사명감을 느끼기는 할까. 유대교는 세상을 개종시키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개종하겠다는.. 더보기
파라샤 드바림 (신명기 1:1-3:22) 티샤베아브 직전 샤밧, 샤밧 하존에 파라샤 드바림을 읽는다. 모세 오경, 토라의 마지막 책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드바림은 things 또는 words로 옮겨진다. 고대 근동 언어가 '이런 일들'을 "이런 말씀들"과 동의어로 여기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문자는 고급 엘리트만이 알고 있는 무기였다. 아마 왕들도 문자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서기관이 왕 앞에서 낭독하곤 했다(왕하 22:10). 즉 사건의 내막은 '말'로 전달되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들은 그러니까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헬라어 성경은 신명기를 Deuteronomy, 두 번째 nom, 법으로 보았다. 해석한 것이다. 왜 두 번째일까. 내용적으로 두 번째 율법서에서 모세는 출애굽.. 더보기